한국희곡

오태영 '영면을 향한 선장'

clint 2022. 1. 22. 19:52

 

 

 

오태영의 극작술은 시기별로 일정한 변모를 보여주지만,

전 시기에 걸쳐 뚜렷하게 나타나는 양상은 비사실주의적 극작술이라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태도,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

오태영의 극작술은 비 사실주의적이다.

시공간은 가상의 것이며,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 역시 사실적 개연성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적 전형성과 개연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 형상은 작가의 생각, 사상,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우화적 비유의 표면일 뿐이다.

현실정치와 연극제도, 분단모순과 통일에 대한 열망, 자본주의 모순과 혁신에의 의지 등

오태영은 우리 연극사에 거의 보기 드문 거대담론 중심의 작가이다.

또한 그의 극작술은 부조리극 적인 성격에서 마당극 적인 요소까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가벼움에서 그로테스크까지,

다음 세대 극작가들에게 준 영향까지, 사회극의 새로움과 성숙을 보여주었다.

 

 

 

 

1977년 한국연극지에 발표한 <영면을 향한 선장>도 부조리한 계열의 작품이다.

확실한 시공간도,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그 상황에 휩쓸려 끌려가는 듯한 작품이다.

 

막이 오르면 안개낀 새벽 세 남자가 어디론가 도망가듯이 가는데, 아버지와 두 아들이다. 아버지에 동조하는 듯한 큰아들 현진에 비해 동생 우진은 자다가 잠옷바람에 끌려나온 듯 영문 모르고 부친과 형에 끌려 어디론가 가는데... 사람없는 한적한 곳으로 이른 시간에 움직이고 동생을 포로 같이 움켜잡고 가는 상황, 그리고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우진을 목졸라 죽일 듯한 분위기다. 그러다 우진이 깨면 고모의 집이다. 상황 설명이 없이, 수배령이 내렸다며 서울 시민을 수배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 나이에 어딜 가냐고 두 아들만 멀리 가라 한다. 무작정 다시 떠나는 우진과 현진. 그러나 많은 피난민으로 형마저 잃게 된다. 우진의 홀로서기가 시작된다. 그 많은 피난민의 이동으로 휩쓸려 가는 도중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나 왜 피난 가는지, 상황은 어떤지 제대로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저 가는 것이다.

어느 바닷가 근처의 하숙집에 여장을 푼 우진. 여기서도 주인이나 투숙객들에게 물어보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방송이나 신문, 전화도 없는 오지에서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지내기란 고통인 듯, 한 대학생은 자살하고... 상황이 호전 됐다는 불투명한 소식에 다른 투숙객들은 모두 서울로 돌라가는데, 우진은 그냥 거기에 남는다. 그간 그는 아버지와 형에게, 고모에게 피난민들에게, 하숙집 주인에세, 소년에게, 투숙객에게 모두 현재 상황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으나 모두 모른다는 것이다.

소외된 그는 피곤하다, 어디 한곳에서 영원히 쉬고 쉽다고 느낀다.... 

제목같이 영면을 향한 선장이 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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