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수는 문빌리지에 산다. 문빌리지는 달동네를 스스로 자조적으로 부르는 표현이다.
별 볼 일없이 살아가는 양아치 병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밤, 병수는 동네 공터에서 개와 함께 죽었다. 병수의 친구들은 그 공터에서 병수가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을까를 추리하는데...
<문빌리지>는 특별하다. 아니 특별한 것을 넘어서 기묘하다. 그날 밤 달동네에서는 병수가 죽었다. 개하고 같이...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며 범인을 찾으려고 애쓴다. 불확실한 과거, 불확실한 미래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그렇게 애쓴다.
문 빌리지, 즉 달동네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은유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세상에는 여전히 그늘진 곳의 위가 너무도 크다. 해결되지 않고 모호한 채 남아있는 과거의 상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전망, 좌표 잃은 인간군상의 모습들이 그저 남루하게 얽혀져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면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자화상이다. <문 빌리지>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그리는 작품이다. 범죄에 의해 희생된 가족, 현대화에 의해 변두리로 계속 쫓겨나는 도시빈민, 해체되는 현대가정에서 소외되는 노인들, 자본의 논리에 의해 홀대받는 하층민들, 가족의 집단자살 등등의 현대적 비극은 냉정한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온다. 현대연극은 이러한 비극의 연인들과 대항하여야 한다.
작가의 글
언젠가 친구 집을 찾아서 달동네 비슷한 곳을 몇 시간 배회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몇 가지 보았던 풍경들이 있었는데..... 누가 올 것 같지도 않은 후미진 곳에 색 바랜 깃발을 걸어 놓은 점술집, 초등은 걸어 놓았지만 상가집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던 집.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런 집이 세 군데나 되었다는 것.
그리고 허물어진 빈집 터에서 담배를 몰고 쌍소리를 해가면서 낄낄대며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밤을 기다리는 양아치... 사업 실패하고 이혼당하고 마치 잡지 가십 속에서나 등장한 것 같은 인생을 사는 친구 녀석, 그 녀석은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를 이미 접은 듯하고.. 취해서 한밤중에 내려올 때 안개 비스듬한 받아 속으로 번지는 뿌연 시내 빛, 그리고 그 속에서 명명하는 수많은 교회의 붉은 십자가들, 색색의 네온사인들... 마치 달동네는 그 위에서 난파선처럼 둥둥 떠서 어디가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온갓 단어들 앞에 ’뉴‘자를 보인 21세기는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고 다 정리된다고 영상 무언가를 상담하면서 흥분에 가지고 떠들어대는데... 같이 내려오던 다른 친구 녀석은 눈에 취해 약간 심하다 싶은 넋두리 하는데.. 이거 아직도 세기말이 계속되고 있는 거 아니야?
그 친구가 이어서 하는 말이 인마, 이런 거나 한번 연극으로 해 봐라, 인마. 매일 폼이나 잡지 말고... 그 말에 순간 나는 죄지은 것처럼 놀라고 이런 건 어떻게 하냐, 인마,
"아무렇게나 하면 되지 않다. 아무렇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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