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개씩 메시지가 올라오는 범상한 반 카톡방 공간에 어느 날 불쑥 올라온 정체불명의 비동의 성적 촬영물, 그리고 그 영상의 주인공으로 지목되어 친구들 사이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소문 속의 ‘그런 여자애’, 고유영을 세 명의 친구들이 찾아 나서는 것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이 공연에서 고유영을 증언하고 회상하며 추적하는 인물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보호자’들이 아니라 같은 학급의 여성 청소년들이다. SNS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루머에 맞서 은소, 고나, 남정은 그들이 알고 있던 유영이라는 친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되짚어간다. 이번 공연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희곡 초고에는 교실에 놓여 있는 유영의 빈 책상이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한다. 청소년 당사자의 시선으로 일상에 틈입한 상실과 부재의 자리를 응시한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심지어 세월호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세월호가 접어놓은 기억을 미투가 펼쳐 읽는 어떤 ‘이후’의 시간성 속에서 관객은 유영이라는 인물의 평범한 형상과 차츰 대면하게 된다. 유영은 무책임하게 확산되는 루머와 달리 “엄청 시끄럽고” “말해야 할 땐” 말하는 친구로 기억된다. 별로 잘 추진 않지만 고나가 일하는 편의점에 놀러와서 뜬금없이 막춤을 추던 유영, 성추행범을 만난 은소를 위로하며 함께 시원한 욕설을 내지르던 유영, 교실에서 이랑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틀어놓고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나누며 노닥거리던 유영의 모습이 무대 위에 재현된다.
그러나 그 유영이 사라졌다. 끝내 사라지지 않는 카톡방 메시지 옆의 1을 남겨둔 채 유영은 어디론가 잠적한 것이다. 비동의 성적촬영물이 유포된 이후 가장 친했던 친구들 앞에도 선뜻 나타날 수 없는 유영의 두려움과 불안이 침묵의 형태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바다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사라져, 사라지지마>는 중요한 선택을 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유영을 등장시켜 심리를 서술하게 하거나 가해자가 처벌받는 과정을 그려내는 대신 피해자의 주변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은소를 시작으로 하여 세 명의 친구들은 영상 속의 여자아이가 ‘사실 나였다’ 라는 메시지를 반 카톡방에 올린다. 물론 소문의 과녁이 된 유영을 스크럼 속에 가려주기 위한 행동이지만, 다르게 본다면 유영이 당한 일은 여성으로 간주되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을 지적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왜 유영이만 소문이 퍼졌지 / 꼬영도 우리랑 똑같은데 / 왜 고유영만 튕겨져 나갔지” 라는 세 친구의 혼잣말 같은 대사는 극중 사건을 유영이라는 특정한 개인이 당한 일로 환원하지 않고 구조적 폭력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결코 가깝지 않은 개인과 구조 사이의 거리를 세 명의 여성 청소년들이 진실한 고민과 행동으로 좁혀나가는 과정이 페미니즘 연극제를 찾은 뭇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유영은 돌아온다. 세 친구들이 학교에 붙일 색색깔의 궁서체 대자보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끝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던 카톡방의 1이 모두 사라진다. “나 안 사라져” 라는 메시지와 함께 유영이 귀환하는 이 결말부는 정당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고민이 엿보이는 파트이기도 하다. 유영의 극적인 귀환을 통해 서사 공간을 봉인하는 대신 유영을 환대하던 세 친구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러 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연극을 현실 쪽으로 다시 열어놓았다. 아마도 그것은 관객석에서 연극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유영’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피해 당사자를 향해 섣불리 일상으로 돌아오라 주문하는 대신 연대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 사라지지 말라는 직접적인 명령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쌓아올리기 위한 하나의 벽돌로서 연극이 그 자리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누구를 위해 연극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누구를 가장 중요한 관객으로서 정향(定向)할 것인지를 섬세하게 고려한 이 개막작을 보고 나오며 아, 페미니즘 연극제가 돌아왔구나를 실감하게 된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상하지만 잔혹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대화들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후면에 투사된 카톡방 영상들은 극장 층고의 한계 탓에 종종 배우들의 그림자에 가려지거나 조명에 간섭받곤 했다. 또한 유영이 당한 일을 ‘충격적인 사건’으로 힘주어 재현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상의 흐름 속에서 어떤 변곡점이 돌출하는 순간을 캐치하는 연출적인 템포 조절의 기술이 미흡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배우 중심의 공연팀 운수대통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다현, 김별, 백소정, 정은재 배우가 저세상 텐션을 발휘하여 무대 위를 날아다니며 웃고, 떠들고, 춤추는 통에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가급적 기술적 요소를 보완하여 돌아온 <사라져, 사라지지마>를 페미니즘 연극제 이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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