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은옥 '그리운 감옥'

clint 2022. 1. 11. 12:54

 

 

 

우리가 아는 판소리 춘향전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내용이다.

1, 2막은 귀신들, 도깨비들과 함께 하는 옥중 춘향이나 내용은 귀신들(무명녀 1, 무명녀 2, 고대수, 가네코 후미코)의 사연을 듣고 이들이 구천을 떠도는 한을 듣는다. 정유재란 때 왜장에게서 정조를 지키려다 나무 꼬챙이에 음부를 찔려 죽은 처녀인 무명녀1, 정유재란 때 남편을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왜적과 싸우다 죽은 부인인 무명녀2, 궁녀로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정변 직후 대역죄인이라는 명패를 목에 걸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다 돌에 맞아 죽은 고대수,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 아나키스트로 대역죄 및 폭발물단속 벌칙위반혐의로 기소되어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박열의 일본인 애인으로, 박열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독방에서 목매달아 죽은 일본 여자. 이들의 사연이 춘향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나 보다. 암행어사로 내려온 이도령은 춘향을 몰라보고 변학도도 춘향을 탐하려는 욕정 빼고는 그리 나쁜 탐관오리가 아니다. 이도령이 변사또에게 시정명령만 내리고 떠나고 변학도의 몇 가지 조건을 모두 물리친 춘향은 자연인으로 남아 아마 여권 신장을 위해 헌신했을 듯 싶다.

 

 

 

작가의 글 : 최은옥

 

춘향전-이고본에는 춘향이 형장을 맞고 갇힌 감옥 안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어두침침 옥 방안에 칼머리 빗기 안고 앉았으니 벼룩 빈대 물 것 무른 등의 피를 빨아 먹고 구진 비는 부슬부슬 천둥은 우르르 번개는 번쩍번쩍, 도개비는 휙휙, 귀곡성 더욱 싫다. 덤비느니 헛것이라, 이것이 웬일인고? 일락 서산 해 곧 지면 각색귀신 모여든다. 살인하고 잡혀 와서 구순되어 죽은 귀신, 국곡식하다 가서 곤장 맞아 죽은 귀신, 사부능욕 굴종하고 형문 맞아 죽은 귀신 제각기 울음 울제, 제 서방 음해하고 남의 서방 즐기다가 잡혀 와서 죽은 귀신 처량히 슬피 울며 '동무 하나 들어왔네' 소리하고 달려들어 처량하고 무서워라. 동방의 실속성과 청천의 울고가는 기러기는 나의 수심 자아낸다.">

음습한 감옥 안에서 "쑥대머리 귀신형용"의 처참한 정경으로 춘향은 설핏 잠이 드는데, 그녀가 꿈속에서 만나는 면면은 아황과 여영 등, 중국의 역대 열녀들이다. 열녀들은 춘향을 부귀하고 향기로운 장소로 안내하여 그녀의 노고를 위로하고 열녀의 본분을 지켜 어려움을 극복하면 그녀 역시 자신들과 같이 열녀의 반열에 올라 칭송받게 될 날이 올 것임을 암시한다.

이 희곡은 춘향전 - 이고본의 옥중 장면의 상황을 변용하여, 춘향이 설핏 잠이 들어 비몽사몽간에 만나는 인물들을 유교문화권에서 신화화된 열녀들이 아닌,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결부되어 탄생된 한국의 열녀전에 기록된 인물들이나 개화기와 근대 초기의 역사에 기록된 여성들로 하였다. 그러므로 이 희곡은 소설 춘향전의 극적 구조상 위기 및 절정에 해당하고 주제 - 외부적 폭력과 사랑의 승리를 집약적으로 드러냈다고 파악되는 옥중 장면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들의 성격이나 정황, 나아가 주제조차도 변용, 현대적인 관점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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