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가을 '개미굴'

clint 2022. 1. 14. 18:11

 

 

 

개미굴은 복잡하게 엮인 네 남매의 이야기다.

무책임한 어른으로 대변되는 아이들의 부모로 인해 네 남매는 더러운 쓰레기 집에 방치된 채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해나가고 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춘이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행동을 따라하며 동생을 위협하고,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네 남매의 삶은 견고히 유지된다.

어느 날, 옆 동네의 캐럿이라는 아이가 아이들의 집으로 온다. 네 남매와 다르게 깨끗하고 반짝이는 캐럿의 모습에 아이들은 크게 동요한다. 아늑하고 안전한 집에서 밝고 명랑하게만 자란 캐럿 또한 아이들의 모습과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다. 부재한 엄마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정이는 그런 캐럿이 자신들 삶에 위험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해 집 밖으로 내보내라 하지만 다른 남자 형제들은 이미 캐럿에게 마음을 벗긴다. 캐럿은 아이들에게 이 집에서 나가야만 한다고 너희의 부모는 나쁜 어른이며 너희는 학대받고 있다고 폭력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고, 네 남매는 자신들의 현실을 자각하며 좌절한다. 캐럿은 아이들에게 자신과 함께 나가길 권한다. 네 남매 중에서 언제나 가장 큰 폭력에 노출되던 겸이는 캐럿을 따라 세상으로 나가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거세게 반대하며 애원한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캐럿을 보며 이는 간절히 함께 나가겠다고 외치지만 그를 포박하고 있는 형제들을 뿌리치지 못한다. 결국, 이는 자신의 생명만큼 아끼던 개미로 형제들을 폭행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습한 내재된 폭력성이 폭발한다.

 

 

 

 

작가의 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시대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는다. 나는 끊임없이 죽어 나가는 죄 없는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을 죽인 가해자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라 생각했다. 개미굴은 세상의 모든 어른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외침이다. 작품을 통해 아동학대라는 주제를 넘어서 폭력의 구조에 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폭력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반복되고 확장된다. 심지어 그마저 아이들에게 조언을 가장한 폭력을 향한다. 개미굴은 어둡고 기이하게 뒤틀린 우화이다. 극중 등장인물들의 평균 연령은 11세다. 어린아이들의 세계에 현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다. 각 등장인물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인물의 군상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에 편승하는 자, 폭력 뒤에 숨는 자, 모순으로 가득 찬 자 등, 이 작품을 통해 사회 안에서 나의 태도와 모습을 돌아보고 내가 행했을지 모를 폭력에 대해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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