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원전 〈히폴리토스〉(B.C 428 최초상연)의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작가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당시 다른 작가들에 비해 다소 인기가 적었으며 오히려 후세에 들어 더욱 인정받았는데, 이에 대해 현대 비평가들은 그가 당시의 규칙과 원칙에서 벗어나 가장 ‘현대 희곡’과 근접한 면면을 보인 것에 그 이유를 든다. 실제로 〈메디이아〉(B.C 431)의 경우 당시 비극 경연 대회에서 꼴찌를 차지했지만 후세 희곡 문학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고 있음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전 〈히폴리토스〉는 동시대 그 어떤 작품의 인물들보다 내적인 힘이 동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플롯을 이끌어 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지금 우리의 모습과 어쩌면 크게 다름이 없다. 같은 이유에서 인지 이 작품은 많은 이들에 의해 재창작되었는데 프랑스의 극작가 장 라신의 〈페드르〉(1677),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1924), 줄스 라신 감독의 영화 〈페드라〉(1962)가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의붓아들을 사랑한 페드라의 마음을 원전에서처럼 아프로디테의 저주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으로 나타낸 것인데, 이는 작품 〈히폴리토스 on the beat〉 역시 그 욕망을 버틸 수 없는 ‘파도’로 은유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아마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이야 할 것’에 대한 구분이며 때로는 이 선택의 분명함이 성숙함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누가 정했으며 정말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일까?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결코 아름다움이란 없는 것일까? 작품은 단순히 자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우리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혹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맞을 수도 있다는 그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신나는 비트 위에 함께 즐기며 사유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간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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