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와즈디 무아와드 '숲'

clint 2021. 10. 24. 09:26

 

 

주인공 루는 10대 소녀로 엄마의 뇌에서 발견된 뼛조각을 통해 8대에 걸친 가족사의 비밀을 풀어간다. 시작은 1870년대 보불전쟁이 일어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베르 켈레르는 전쟁 이후 아버지 알렉상드르와 독일 국적 취득 문제로 갈등을 빚자 아버지의 하녀 오데트와 함께 아버지 곁을 떠나 벨기에 근처 아르덴 숲에 정착한다. 자신의 사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독일 국적 취득에 몰두하는 아버지와 달리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가족들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미고자 한다. 하지만 오데트는 결혼 전 알렉상드르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남편 알베르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데트가 에드가, 엘렌 쌍둥이를 낳자 알베르는 딸 엘렌이 친딸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며 성인이 된 엘렌을 아내로 삼으려 한다. 이렇게 가문의 비극이 싹튼 것이다. 성인이 된 에드가는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지만, 아르덴 숲에는 가족 말고 누구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그는 이성과의 사랑에 목말라하다 쌍둥이 여동생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한 아버지를 살해하고 여동생을 성폭행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엘렌은 아버지가 알베르인지 에드가인지 모를 쌍둥이를 출산한다. 레오니와 이름도 지어 주지 못한 사내애를 낳는데, 이 사내애는 엠마를 독차지하기 위해 동굴로 엠마를 납치해 감금한다. 레오니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뤼시앙이 전장을 피해 아르덴 숲으로 들어오자 그를 자신과 가족을 구해줄 구세주로 여기고 엄마를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뤼시앙은 이름 없는 레오니의 쌍둥이 남매와 싸우던 중 죽음을 맞게 되고, 레오니는 이후 뤼시앙의 딸 뤼디빈을 낳는다. 레오니는 딸이 밖으로 나가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려고 딸과 함께 숲을 빠져니오지만 적응하지 못한 채 딸만 고아원에 맡기고 숲으로 돌아간다. 입양 되어 어엿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뤼디빈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 조직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유대인 친구 사라가 나치에 의해 끌려갈 위험에 처하자 친구와 친구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사진을 바꾸어 신분증을 위조한 것이다. 사라의 딸 뤼스는 전쟁 중 캐나다로 보내져 자라게 되는데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약속한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알코올에 의지한 채 딸 에메를 방치하고 만다. 결국 에메는 입양되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서 남편 바티스트를 만나 행복한 삶을 꿈꾸던 중 뇌종양을 앓는다. 에메는 딸 루에게 자신의 뇌에서 발견된 뼛조각을 잘 간직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어린 루는 뼛조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긴 여정에서 나서 마침내 뼛조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이해하게 된다.

 

 

줄거리를 쉽게 요약할 수 없을 만큼 이 작품의 전개는 복잡하기만 하다. 오데트, 엘렌, 레오니로 이어지는 8대에 걸친 두 가문의 비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복잡하게 얽힌 가문의 비밀은 침묵과 근친상간에서 비롯된다. 알렉상드르는 알베르의 엄마가 누구인지, 오데트는 쌍둥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뤼스는 자신의 엄마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한 채 침묵한다. 여러 쌍의 쌍둥이도 등장하는데 에드가와 엘렌, 레오니와 이름 없는 사내애는 근친상간이라는 비극 속에서 태어난다. 더욱이 성폭행, 존속 살해, 자살 등 폭력으로 인한 광기는 대를 이어 가계도를 피로 물들이게 된다. 에드몽과 뤼스만이 가족에 서린 광기에서 벗어나지만 이들도 가문의 저주를 풀지 못한 채 죽음을 맞고 만다. 고통으로 점철된 증오의 역사가 베일 속에 묻히고 만 것이다

 

 

 

무아와드 전쟁 비극 삼부작의 종막이다. 와즈디 무아와드는 열 살 때 내전 중인 고국 레바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나중에야 레바논에서 벌어진 내전의 참혹한 실상을 전해 들은 무아와드는 죄의식과 부채감에 사로잡혀 전쟁, 테러, 폭력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쟁 비극 삼부작이라고도 부르는 연안지대, 화염, 은 그 결과다. 무아와드는 2006년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서 세 작품을 한 편의 연극으로 구성해 11시간 동안 공연했고, 프랑스 관객은 긴 공연에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은 삼부작을 닫는 마지막 작품이다. 십대소녀 루가 어머니 에메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사에 얽힌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루는 몬트리올 폴리테크닉 대학 총기 난사 사건에서 시작해 제1차 세계 대전까지, 15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를 파헤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 자신을 방치한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여정의 끝에서 루는 비로소 어머니와 할머니, 조상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루의 이런 변화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모두에게 무아와드가 건네는 연대와 위로다. 무아와드는 삼부작에 걸쳐 전쟁의 본질에 다가간다. 근친상간, 복수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전쟁의 본질과 관련 있다. 대의와 명분은 실제 전쟁에 내몰린 개인에겐 공허한 구실일 뿐이다. 사실은 누구를 향해 왜 쏴야 하는지도 모른 채무차별한 공격을 계속해야 하는 게 전쟁이다. 총부리는 어느새 형제와 부모를 향하고, 천륜이 그렇게 무너진다. 무아와드는 전쟁이 인간성을 완전히 앗아 가 버린 경악할 순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무너진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무아와드의 주인공들은 전쟁 때문에 증오와 복수, 폭력과 근친상간으로 뒤엉킨 가계도의 끝에서 아름다운 사랑과 위대한 희생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 내전, 테러, 전쟁에는 가공할 증오와 폭력만 들어차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또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와즈디 무아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