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테르지앙이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의 프랑스어판 번역본을 읽고 희곡으로 각색했다. 총 12권, 4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대하소설이 유럽에서 번역 출판된 것도 최초의 일일 뿐만 아니라, 이처럼 희곡집으로 재생산된 것도 처음 있는 일. 지은이는 <아리랑>의 방대한 스케일을 3일간의 주요 사건으로 재구성하고, 원작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주요인물에 극의 흐름을 집중했다. '춘향'이라는 성처녀 캐릭터를 창조하여 주제를 부각시켰으며, 섬세하게 변주되는 무대장치들은 한 편의 연극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행태들을 가려왔던 침묵의 벽이 조정래의 소설과 더불어 일거에 허물어진 느낌이다. 이 벽은 희곡이라는 장르의 어조에 새롭게 실려 다시 충격파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 말하는 지은이는 민족의 슬픈 역사를 복권 시키고 긍지의 함성을 이끌어내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독일이 분단을 극복했듯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구한말 김제의 소작농은 빚 때문에 20원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 가고 만다. 일본인들의 엄청난 착취와 친일파의 만행 속에서 수많은 농민은 땅을 빼앗기고 만다. 나아가 반대 시위에 가담했던 농민들은 총살당하거나 징역형을 살게 된다. 이에 송수익은 의병 투쟁에 나서기 시작한다. 의병 활동 중 부상 당한 후 만주로 건너간 송수익은 독립군 대장이 된다. 자신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했던 지삼출과 손판석도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나고 감골댁네 가족도 합류한다. 관동 대지진으로 일본 내 조선인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투쟁을 계획하던 송수익은 지인의 배신으로 관동군에 체포된다.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송수익이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한다. 송수익의 아들 송가원과 송중원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한다. 일본군의 토벌 작전 앞에서 조선 독립군은 끈질기게 맞선다. 한인 20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고, 많은 독립군이 전사한다. 마침내 일본의 패전 소식이 들려오지만, 중국인들이 만주에 사는 조선인들의 농토를 빼앗고자 몰려온다. 조선인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만주벌판을 유랑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전라북도 김제시를 배경으로 일본의 수탈과 우민화 교육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일제에 협력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고발, 사회주의계와 비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은 역사소설로서 《아리랑》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이다.
《아리랑》은 총 4부작으로 12권의 단행본으로 짜여 있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그리고 광복 때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역사적, 사실적, 시대 고발적이며, 민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시기의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민중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조정래 작가의 의도는 일제 강점기에 치열하게 저항하며 수많은 고난을 끈질기게 버텨 낸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게 함으로서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에 있다.
피에르 앙드레 테르지앙(작가)의 말
조정래 작가가 쓴 대하소설 <아리랑>은 1894년에서 1945년까지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운명을 묘사한 장편 서사시와 같은 작품이다. 이는 나중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2004년 4월에 희곡으로 각색, 출판되기도 했다. 그것이 이제는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에서 출판되기에 이른 셈이다. 프랑스어 희곡을 집필한 나로서는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조정래 작가는 한국의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고 그의 작품은 매우 복잡하고 방대하다. 그는 한국의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혹은 마르케스라 불러도 좋을 작가다."
연극적 필요에 의해 새롭게 가미된 춘향과 투사(鬪士)라는 캐릭터를 제한한다면, 본 희곡은 원작소설인 <아리랑>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과 행위들을 되도록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본 희곡은 조만간 다른 언어들(러시아어, 스페인어 등등)로도 번역될 예정이고, 어쩌면 한국인 작곡가에 의해 발레-오페라로 한번 더 각색되어 뉴욕 무대에 올려질 전망이다. 바라건대, 이 작품이 중국의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처럼 화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희곡을 집필하는 내내 나는, 현 독일이 분단을 극복하여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궁극적인 우의가 회복되었듯이, 한국도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프랑스의 소중한 우방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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