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임창빈 '왜그래'

clint 2021. 9. 29. 15:17

 

 

포장마차로 3대에 걸쳐 100년을 지켜온 세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 <왜그래>는 초반 1. 2장은 포장마차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群像)들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담아낸다. 술 먹고 옆자리에 시비하는 사람. 술집에서 손님에게 당한 화풀이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술집 여종업원들, 해고 당한 근로자, 고등학생이면서 친구와 술마시다 아버지가 포장마차에 들이닥쳐 딱 걸린 아들 등 포장마차는 도시의 서민들이 찾는 웃음과 해학의 상징으로 한번쯤은 경험한 일이다. 그곳에는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이 들여다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맞아! 저런 사람 꼭 있어'라며 공감한다. 특히 술집에서 악기 연주로 돈을 버는 술꾼의 등장으로 포장마차는 순식간에 콘서트장처럼 열기로 가득 찬다. 술 취해 옆자리에 시비거는 연기와 함께 터져 나온 숟가락 장단은 흥겹다. 하지만 이런 흥겨운 분위기도 포장마차 여주인의 손님들에게 털어놓는 삶의 여정 앞에 모두들 숙연해진다포장마차 주인의 이야기는 한 여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이라기보다 지난 세월을 겪어 온 우리들의 어머니들의 이야기며 바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시간을 이렇게 거꾸로 돌리면 아픔의 상처가 곧바로 드러난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국모가 살해당하고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온 산하를 쇠못으로 못질하고 돈 벌게 해주겠다며 유혹해 강제로 어린 소녀들을 끌고 가 일본군위안부로 만들고 조국 독립을 위해 나섰던 우리의 선배들이 있었고 또한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이들이 육탄으로 총칼 앞에 나섰던 과거의 역사는 포장마차 여주인의 지난 시간 속에서 개인의 아픈 기억과 함께 민족의 역사로 그 슬픔을 함께 한다. 나라도 잃고 가족도 잃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 포장마차에서 싸우는 손님을 보는 포장마차 여주인의 눈에는 이제 쉬고 싶다는 회한만 남는다. 포장마차 여주인의 "왜들 그래. '왜 그래' 이제 그만하자!"는 듯한 긴 탄식이 포장마차를 넘어 울려퍼지기를 희망해 본다. <왜 그래>는 대한민국 사회의 다채로운 풍경을 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포장마차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을 드나들면서 포장마차의 존재를 구성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무슨 소통들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준다. 1950년 후반부터 생긴 거리의 선술집인 포장마차는 술잔을 부딪치며 대화하는 소통과 배려가 있는 공간으로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일상적인 존재로 도시 서민들과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가 존재하던 장소였다. 연극 <왜 그래>는 포장마차를 배경으로 그곳을 드나들면서 포장마차의 존재를 구성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무슨 소통들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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