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예슬 '클로이'

clint 2021. 5. 4. 14:22

 

 

사고였어요. 미국에서 총기 불발사고는 흔한 일이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제가 입양된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사회복지재단에서 근무하는 지우는 과거 한국에서 입양 보낸 아이들의 현재 실태조사 프로젝트로 인해 미국으로 출장을 간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집은 과실치사로 양아버지 알렉스를 살해한 죄로 형을 마치고 이제 갓 집으로 돌아온 클로이의 집. 덴버에 위치한 집에 도착하자마자 폭설로 인해 지역공항이 폐쇄되고, 클로이, 수현, 지우는 불가피하게 함께 며칠을 보내게 된다. 미묘하게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세 사람. 그러던 중 하영의 등장으로 알렉스가 사망한 날을 비롯한 전후의 증언들이 엇갈리면서 지금껏 누구도 완전히 알지 못했던 사건 당일의 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지우가 덴버에 올 수 밖에 없도록 이끈 과거의 인연 또한 밝혀진다.

 

 

<클로이>는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양아버지에게 총을 쏘았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다녀온 클로이가족과 그녀를 인터뷰하러 간 국내 입양기관 직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표면적으로 클로이는 중심이 사라진 시대에 국가라는 중심을 떠나 부유하는 디아스포라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이지만, 이면에 더 큰 주제가 출렁거리고 있다. 진실을 알기 어려운 인간의 나약함, 친밀한 관계 속에 고인 해묵은 상처와 오해 등,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이래 오랫동안 무대에서 고민해온 연극적 고민이 녹아있다. 희곡의 언어가 점점 단선적으로 흘러가고 연극성만 부각되는 시절이라, 깊이와 문학적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을 가진 <클로이>의 발견이 반갑다.

 

 

작가의 글

어렸을 때 주인공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것이 사실은 코드로 이루어진 허구라는 설정의 SF 영화를 보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10으로 된 코드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쓸쓸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클로이>는 내가 나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생긴 불안과 오해로부터 시작된다. 각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하고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지만, 결국 모든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 실패의 결과로 어떤 이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혹은 반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그대로 둔 채 다른 길로 걸어가곤 한다. 하지만 시도조차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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