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거 건강한 거야. 그거 절대 이상한 거 아니고 정말 당연한 일인 거 알지?”
40대 중반의 나이로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발달장애인인 고등학생 딸 혜성을 키우고 있는 수희. 어느 날 혜성이 ‘성’에 눈을 떴으니 주의 깊게 살펴달라는 학교 측의 연락을 받는다. 평생 아홉 살로 알고 키워온 내 딸이 학교에서 남자 선생님에게 제 속옷 얘기를 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자신도 키스 해봤다는 둥 허풍을 떨더란다. 여자가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음탕하고, 낯부끄러운 것이라 알고 살아온 그녀에게 딸의 이런 변화, 아니 성장은 너무 낯설고 두렵다.
<별을 위하여>는 발달장애인의 ‘성’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미투 열풍, 버닝썬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가부장 주의에 억압되고 비틀린 ‘성’과 ‘여성’은 우리 시대의 뜨거운 문제다. 그런데 가장 바깥 쪽, 그 가부장적 정상성이라는 획일적 기준으로부터 제일 바깥으로 밀려난 여성 발달 장애인의 ‘성’은 어떨까? <별을 위하여>는 그것을 다루되 크지 않은 목소리로, 사회적 관점 보다는 미시적인 가족사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성이 왜곡되는 사회적 폭력과 편견, 그 충돌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잔잔한 일상 속에 그려진다. 너무 잔잔해서 연극성의 결핍이 우려되는 지점도 있지만, 자극적인 표현이나 큰 목소리가 대세인 시대에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삶의 복잡함과 막막함, 그것을 고독하게 감내하는 개인의 삶을 과장 없이 응시하는 작품은 분명 눈여겨볼 미덕이 있다.
작가의 글
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발달 장애인’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의 해소되지 못하는, 인정받지 못하는 ‘성적 욕구’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시간 남짓한 방송에는 발달 장애 및 지체 장애인도 성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무척 적나라하게 그리고 자극적이게 담겨졌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욕구와 권리 속에서 ‘여성 장애인’들의 욕구 이야기는 여전히 한 꺼풀 묻히고 포장된 채로 이야기 되고 있었다. 그 뒤 ‘여성 발달 장애인’과 ‘성’을 동시에 검색해보았다. 역시나 ‘성폭행’과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졌다. ‘성유린, 집단 성폭행, 떡볶이 화대, 강간으로 보기 힘듦‘. 이것들이야 말로 여성 발달 장애인의 성이 이 사회 속에서 한 꺼풀 감춰져야만 했던 적나라한 이유들이 아닐까.
이 작품으로 여성 장애인들도 성적욕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얘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도 성적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묻고 싶다. 여기 당신들 앞에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다. 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모르는 것이 빤한 여자아이가 당신 앞에서 소위 ‘야한’ 옷을 입고 소위 말하는 ‘흘리는’ 행동을 했다. 이 아이를 당신은 과연 어떻게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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