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톤 체호프 '벚나무 동산'

clint 2021. 4. 3. 18:23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벚나무 동산의 나이든 주인공들은 끝내 깨치지 못한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공간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의 환상과 기억에 포박된 채 한 걸음도 자유롭지 못한 구시대의 망령이 무대를 배회한다. 그래도 한 줄기 밝은 빛이 그들의 미래를 비춘다.

19032, 체호프는 아내이자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배우 올가크니페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221일 희곡을 쓰기 시작했어.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를 연기하게 될 거야.” 같은 해 1014일에는 희곡의 최종적인 수정작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편지를 크니페르에게 보낸다. “희곡을 보냈어. 당신은 아마 이 편지와 동시에 그걸 받게 될 거야. 작은 봉투를 동봉하니까 희곡을 받게 되거든 읽어봐. 읽고 난 다음 즉시 전보해. 네미로비치에게 희곡을 전해주고, 그가 나한테 전보했으면 한다고 말해. 무엇이 어떤지 알고 싶다고 말이지. 만일 극장에서 새로운 걸 제기하고 싶다면 나한테 편지하도록 해.“ 12월에 체호프는 예술극장의 벚나무 동산공연 연습에 규칙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예술극장에서 진행하던 공연 준비에 만족하지 못했다. 1904117일 예술극장에서 벚나무동산을 초연한 이후로 체호프는 공연에 불만족한 태도를 취한다1904410일 크니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체호프는 예술극장의 희곡 해석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어째서 공연포스터와 신문에서 희극이 그토록 끈질기게 드라마라고 불리는 거야? 네미로비치(단첸코)와 알렉세예프(스타니슬라프스키)는 희곡에서 내가 쓴 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그사람들이 한 번도 희곡을 주의 깊게 읽지 않았다는 말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

공연과 희곡에 대한 체호프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벚나무 동산에서 동정심이 가는 백수들의 무덤에 세워진 기념비가 세워졌다.” (루시, 1904. 110) “체호프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이런 실제적인 파산과 무능력을 잉태한 바로 그 심리를 그토록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러시아어, 1904, 19)

 

 

 

 

연출가인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이 작품에서 몰락한 지주남매인 가예프와 라네프스카야에게 중점을 둔다. 벚나무 동산으로 대표되는 토지자본의 몰락과 다차 건설과 임대라는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대표자 로파힌의 부상을 대립시키면서 연출가는 전자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19세기 말 러시아에 몰아닥친 상업자본의 회오리와 그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지주 귀족들의 행태가 벚나무동산의 사회적인 배경이다. 체호프는 생애 마지막 장막극에서 그와 같은 비극성보다는 새게 일어서려는 신세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17살의 아냐와 만년 대학생 트로피모프에게 새로운 출발의 희망찬 여명을 선물했다. 따라서 체호프가 이 희곡의 장르를 희극으로 규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것 말고도 벚나무 동산에는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3막에서 에피호도프에게 화가 난 바랴가 휘두른 지팡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은 에피호도프가 아니라, 벚나무 동산의 새 주인 로파힌이다. 쉰 살이 지났는데도 애들처럼 알사탕을 입에 물고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응석받이처럼 행동하는 가예프는 어떤가. 자기네 조상의 출처를 말에서 찾는 시메오노프-피쉬크의 과장된 얼뜨기 짓은 벚나무 동산의 장르를 보드빌로 생각했던 체호프의 의중을 적실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우리가 벚나무 동산에서 유념할 대목 가운데 하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표류하다가 종당에는 완전히 몰락해가는 인간군상과 재빨리 그것에 적응해 성공하는 졸부들의 행태다. 농노의 후예 로파힌의 하얗고 기다란 두 손, 흰 조끼와 노란구두는 지적 허영심은 있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자기 과시욕과 충돌한다. 반면에 가예프는 격변하는 세태의 격랑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끝없이 침전하면서 무위도식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이와 같은 군상들 사이 어딘가에 아냐와 트로피모프 같은 새로운 인물 군상이 자리한다. 하인으로 등장하는 야샤는 로파힌의 악화된 아류이며, 에피호도프는 가예프의 희화화된 변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냐샤 또한 지나간 과거의 라네프스카야와 거리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인간 군상들이 모여 인생의 단면을 파노라마 처럼 보여주는 작품이 벚나무동산이다. 체호프는 마지막 작품에서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게 슬픈 눈길을 던지면서도 다가올 새로운 것들에 따뜻하고도 강력한 축복을 던진다. 라네프스카야 개인의 벚나무 동산을 러시아 전체의 벚나무 동산으로 만들려는 젊은 주인공들을 건강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