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리하르트 바그너 '탄호이저'

clint 2020. 3. 27. 17:43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의 대립을 다루는 《탄호이저》를 이끄는 양대 축은 각각의 사랑의 현신인 사랑의 신 베누스와 백작의 조카 엘리자베트이다. 노래 경연 대회에서 탄호이저는 베누스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좌중을 경악에 빠트리지만 간신히 처형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엘리자베트를 배신한 것을 후회한 탄호이저는 로마로 가는 순례자 행렬에 합류한다. 교황은 그를 사면해 주지 않지만 엘리자베트가 목숨을 바쳐 베누스로부터 그의 영혼을 되찾는다. 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아이디어를 하인리히 하이네에게서 얻었던 바그너는, 다시 한 번 하이네의 풍자적인 시를 바탕으로 하여 〈탄호이저〉를 구상하였다. 그는 하이네의 시 뿐만 아니라 루트비히 티크의 소설 《진실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와 15세기의 민담 ‘탄호이저의 노래’, 그리고 벡슈타인이 수집한 튀링겐 설화집을 참고로 대본을 완성했다

 

 

 

 

 

<탄호이저〉에는 정숙하고 순결한 엘리자베트와, 관능적인 베누스라는 상반된 여성이 등장한다. 전설상의 엘리자베트는 바르크부르트의 영주 헤르만의 조카딸이지만, 바그너는 또 다른 인물의 성격을 엘리자베트에게 투영시켰다. 튀링겐의 영주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한 헝가리의 공주 엘리자베트 폰 운가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흔히 ‘장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에 생애를 바쳤고 훗날 성녀로 추앙받았다. 한편, 베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잘 드러나듯이 관능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여성상이다. 사실 1843년에 〈탄호이저〉의 대본을 완성했을 때 바그너가 붙인 제목은 〈베누스의 산, 낭만적 오페라〉였다. 그만큼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베누스가 상징하는 관능적인 사랑을 중요한 주제로 생각했던 것이다. 평생 동안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던 바그너는 이 작품을 통해 베누스가 상징하는 감각적인 사랑을 죄악시하는 종교적 관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민담과 하이네의 시는 탄호이저가 베누스의 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바그너는 이러한 결말을 탄호이저가 구원되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탄호이저의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성스러운 엘리자베트의 희생적인 사랑과 죽음이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절망했던 바그너는, 엘리자베트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의 헌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가의 구원’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는 또한 바그너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이며, 바그너 자신이 일생 동안 찾아 헤맨 이상적인 여성상이기도 했다. 특히 바그너는 당시 아내 민나와의 불화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성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