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창작마을단막극제 2001년7월 명동창고극장 공연(연출/김대현)
수정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유독 다른 할머니와는 달리 무뚝뚝한 차가운 할머니. 유일한 혈육 손녀 수정이였지만 할머니는 단 한번도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다. 엄마라는 존재를 잊고 지내는 수정과 달리 할머니는 엄마에 대한 강박관념에 숨 조이며 살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였을까? 수정은 엄마가 궁금하다. 보고싶다기 보다는 궁금하다. 그 엄마가 어떠했길래 할머니와 수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을까! 늘 수정의 머리 속엔 할머니와의 공간에서 탈출하는 그 생각뿐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언젠가 도피할 수 있는 구실이 되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 소원이 대학입학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기숙사생활을 자처하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와의 공간을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 수정의 독립에 의한 할머니에게 큰 충격을 가하지 않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에게 큰 자극제가 되질 못했다. 갈테면 가라는 식의 무덤덤한 할머니. 자유롭게 풀어놓는 듯 싶었지만 그런 할머니의 무관심이 수정에겐 더 큰 억압이었다. 수정은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해줄 편안한 시간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누리는 그때만큼은. 하지만, 이젠 안다. 단지 회피하고 싶은 기억의 잔상에 대한 보상심리였을 뿐이란 걸. 수정은 다시 할머니에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이웃집 민지할멈에게 전화 연락을 받았다. 부정맥으로 입원했고 며칠 전에 퇴원했다고. 할머니가 연락하지 말라는 당부로 이제서야 전화한다고.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늙은이에게 치료는 사치일 뿐이라며 치료는 커녕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고통 속에서 지낸다며 울면서 전화를 거신 민지 할머니. 한번은 단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고이 간직한 열쇠를 꺼냈다.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에… 할머니의 사랑.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의 방식과 방법이 달랐을 뿐 그 누구보다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안다. 하지만 내색할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란…
작가의 글
급변하는 세상. 도덕과 윤리는 모든 사람을 기준으로 세워진 약속이다. 그러나 시대가 거듭될수록 서로 인식되어 가는 방법과 방식이 다르다. 과연 어떤 문화 차이에 의해 세대간의 골이 깊어 가는 것일까? 할머니와 손녀 그리고 딸이자 엄마인 여성 3세대의 삶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 그리고 딛고 서야하는 우리 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해결할 수 없는 세대갈등으로 비춰지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안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명제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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