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코르네유 '루와얄 광장'

clint 2019. 3. 15. 09:47

 

 

 

작가의 글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앞선 작품(하녀를 지칭)만큼의 장점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의 구절들은 더 우수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사건의 이중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한 정신 때문에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랑에 의해 불편을 느낀 알리도르는 연인인 앙제리크를 그의 친구인 클레앙드르에게 보내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경박함을 입증하는 가짜 편지를 그녀에게 전달하도록 만들며, 그녀가 분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애정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정도로 신랄한 경멸을 이 위조편지에 덧붙인다. 이 계획은 무산되고,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녀를 도라스트에게 가게 만든다. 이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납치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차례로 이루어지는 두 계획은 두 개의 사건을 만들어내며, 게다가 작품 속에서 조연에 불과한 삽화적인 두 인물의 결혼에 의해 상당히 서툴게 끝나는 극시에 두 개의 영혼을 제공한다. 주연 배우들은 이상하게 끝을 맺으며, 그들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은 5막의 생기를 잃게 한다. 잘 생각해보면 5막에서 주연들이 마치 조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알리도르의 시구는 하녀의 시구의 매력을 지니지 않는다. 주된 사건과 갚은 관련이 있고, 결국 연인 없이 남아있는 하녀는 속셈을 지니고 있는 여주인과 그녀 아버지의 면전에서는 감히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으며, 그들과 자신의 불운에 대해 자유롭게 비난하기 위해서 그들이 다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며, 그녀에 대해 불평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바람과는 아주 반대적인 결과에 뒤따르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알리도르는 분명 이주 좋은 친구여서 아주 나쁜 연인일 수 없다. 그의 정열은 연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를 모욕하고 싶을 정도로 그를 괴롭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친구의 이해관계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에게는 아주 소중한 휴식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그는 도라스트가 그녀를 획득하게 만드는 이 첫 번 노력에 만족했을 것이다.

 

 

 

휴식에 대한 사랑은 5막에서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취했던 해결책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녀에게 했던 배신행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연인에게 열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가 그녀에게 그를 증오할 이유를 제공했을 때만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그릇된 품성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앙제리크의 성격은 그녀가 지나치게 사랑에 빠져 있는 한에서는 예의범절에서 유래하고, 너무 일찍 의심스러운 남자에 의해 납치당하기로 결심한다. 이 납치는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비극에서는 거대한 죄악들에 대한 묘사가 관객들의 눈을 돌리게 할 정도로 충분한 공포를 전달하기 때문에 이 죄악들이 처벌받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이 불충분한 성공을 부여하는 것이 좋았다 비교할 수 있는 오류들로 말하자면 같은 것은 아니다. 또한 만일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이들이 그릇된 방식을 통해 그들이 욕망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을 본다면 이 나쁜 행동들이 젊고 사랑에 빠진 영혼에게 이 행동들을 모방하라고 충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성에 의해 도입되고 관례에 의해 합법화된 오류, 다시 말해 희극의 여성 연인들이 방에서 말하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길에서 말하게 만든다는 오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앙제리크가 증오의 대상과 결혼하도록 만드는 원한의 신속함과 무분별함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동안 그녀를 거리에 두려고 감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자신에 대한 더 큰 예의범절과 함께, 그리고 알리도르와의 만남에 대한 더 큰 확신과 함께, 방안에서 한숨 쉬게 만들기 위해, 장면들의 연결을 깨뜨리기를, 그리고 이것을 제외하면 이 극시 속에서 제법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는 장소의 일치를 깨뜨리기를 더 좋아했다. 그녀가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본 필리스는 앙제리크가 무대 위에서 둘 모두를 알아차렸는지 아닌지를 나무 잘 보았을 것이다. 무도회 동안 그녀를 지켜보도록 자극했던 둘 사이에서 다시 이루어진 어떤 공모에 대한 의심 대신에, 그녀는 완전하게 확신하고, 알리도르의 새로운 계획과 이 작품의 줄거리를 깨뜨릴 명령을 내릴 필요성을 지녔을 것이다. = 코르네유

 

 

 

 

루와얄 광장은 거의 틀림없이 1633-1634시즌에 몽도리 극단에 의해 상연되었으며, 이 희극은 성공을 거두었다. 코르네유는 다음과 같이 절반은 유쾌하고, 절반은 감동적인 작품의 특성을 강조했다. “멸시당한 앙제리크의 고통과 한숨은 악의적인 필리스, 너의 놀림보다 덜 유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네가 목청껏 웃게 만드는 사람들은 울고 있는 앙제리크를 보면서 그들의 눈물을 억제할 수 없다 

무대배경은 현재의 보쥬 광장인 루와얄 광장이며, 당시에는 아름다운 지역들 중에서 가장 새로운 곳이었다. 이 광장은 아치형 통로, 밤에는 걱정스러운 짙은 어둠과 함께 오해와 납치에 아주 편리하다. 이 작품은 한 쌍, 즉 앙제리크와 알리도르라는 쌍 주위에서 진행된다. 그녀는 아주 자신감이 있고 충실하며, 그는 호기심 많은 등장인물이다. 단연코 그가 주역이라는 것은 본래 이 작품의 제목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 루와얄 광장 혹은 이상한 연인편집증에 이를 정도로 자유에 열중하는 그는 사랑이라는 이성의 상실을 거부한다. 충실한 여성과 폭군이 되는 남성 연인사이에서 사랑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잔인한 유희가 시작되는데 그 유희가 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하녀속에서 아마랑트가 홀로 남아 있었듯이 알리도르는 마지막 독백을 한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되찾았고, 자신의 무관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는 자신만의 삶을 산다. 그는 장차 그가 마음에 들 때면 물러날 수 있을 유희를 부추기기 위해 사량을 가장할 것이다. 앙제리크가 결혼했다면 그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 질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앙제리크는 은거하고, 그는 질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대단원 너머에서 독점욕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에 따르면 최선의 것을 위해 모든 것이 끝난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 아마도 그렇다고 믿을 것이다. 사실 그는 필리스가 제대로 보았듯이 지속적인 <변심>, 후회, 용서의 반복 속에 엄매여 있다. 우리는 자유의 신봉자인 이 동 주앙이 영원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을 의심한다. 아마도 그는 가장 생생한 것이 단절하는 것인 즐거움만을 알아차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