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이 1945년 12월, <예술운동>1호에 발표한 단막극이다.
친일파였던 사업가 이 사장이 해방 이후 처세를 위해 지난 행적을 변명하고 부인하는 것을 풍자· 비판한 작품이다.
해방 전후 수도 경성이 배경이다. 이 사장은 해방이 되자 시골 도회의원 강병호와 함께 연합군 편에 선다. 미군정에 아부해 다시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사장의 의지는 딸 진주의 가출과 통역 학생의 항의 때문에 좌절된다. 결국 그는 광복군의 아내이자 처와는 이종사촌 간 ‘옥천 마님’을 서울로 초대해 처세를 위한 도구로 쓰고자 한다. 하지만 ‘옥천 마님’은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시대가 바뀌니 금세 새로운 정치권력에 야합하고자 하는 이 사장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연극 마지막 장면에 언급한 황혼은 이 사장의 몰락을 암시한다.
해방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친일파 청산문제를 다뤘다는 점이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일제 말기, 대중극작가로 활동을 본격화한 동시에 비판적이며 진보적인 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던 작가에게 일본과 결탁해있던 자본가와 친일 세력을 청산하는 문제는 중요한 일이었다. <황혼>은 해방 공간에서 새로운 정치권력과 손잡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친일파 전형을 묘사하고 다른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들을 비판함으로써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과제를 부각하고 있다.

송영의 <황혼>은 해방된 후에도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인 생존방식을 보여주는 친일파의 자기 변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진수는 동경 상과대 출신의 수완 좋은 실업가로서, 일본을 배경으로 사업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스스로 애국자를 자처하며 애국당을 꾸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해방 후 한동안 전전긍긍하던 이진수는 정당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고, 이에 기부금을 내고 참여하게 된 강병호는 애국자인 자신들을 비난하는 무리를 친일파와 다를 게 없다고 자기합리화한다.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기보다 같은 조선 민족으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죄과에 대한 참회나 반성 없이 애국당이라는 명목으로 미화시켜 해방된 조국에서도 버젓이 존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해방된 조국에 신망받는 지도자에 대한 또 다른 야심을 포기하지 못한 까닭이다. 결국 두 사람에게 민중이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련된 방편일 뿐이고, 이들의 의식 또한 다수의 민중을 경외시하는 봉건적 산재의 습성을 보여주고 있다. 친일의 행적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이진수의 딸 진주뿐이다. 이진수는 '조선민족 대동단결‘ 만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임무 수행을 위해 미군정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보수주의적인 구목사로부터 민족운동가인 통역사 김영철을 소개받는다. 이진수는 미국 측과 관계하려는 자신의 의도에 대해 미국 측이 일본세력을 내쫓아준 게 고맙고, 하루빨리 독립해 의견도 교환하고, 또 자신들의 실력이 아직은 부족하기에 미국 측의 지시와 지표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김영철에게 설명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들의 순수한 의도에 이끌리 따라온 김영철은 끝내 이들의 사고방식에 분개하며 자리를 뜬다. 그러나 이진수는 꼭 한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미련과 야심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 딸 진주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진수는 또다시 어리석은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해방 후 송영의 유일한 희곡으로서 부일 협력의 몰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당시 좌익 계에서 주장하던 봉건 잔재와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진수라는 인물의 포기하지 못한 야심을 민족을 떠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관점에서 매우 잘 포착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인물이 새로운 국가건설에 동참하게 되는 '시대적 모순'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친일파 청산문제만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표현이 돋보인다.
극의 결말에서는 딸 진주와 친일파 이진수의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조국 건설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진수의 “좋다. 그래도 나는 한번 해보고 말겠다”라는 마지막 대사를 통해 진미를 해서라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친일파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은 해방 후 친미한 친일파가 또다시 득세했던 당시 세태의 부정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공간의 사회극은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과거의 청산과 세대교체의 새로운 공간으로서 갈등 해결의 단서로 인식하고 있다. 작품의 전반에 깔려있던 문제와 갈등은 해방을 통해 일대 전환을 맞이하고, 변신을 꾀하는 새로운 조국건설의 열망으로 기대에 차 있다. 이처럼 '해방'에 대한 인식은 모든 것이 실현 가능한 열려진 공간으로 용서와 화해가 가능한 긍정적인 세계의 도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주의자는 변혁의 주체이기보다는 관찰자 내지는 방관자로서 등장하고 이들이 제시하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 또한 이론에 그치는 소극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황혼>의 미군정 접촉을 위해 이진수에게 고용된 통역생 김영철은 친일파인 이진수와 강병호의 대립되는 인물로서 이들의 기만적 행위를 알고 분개한다. 그에게 있어서 통역이라는 직업은 건국대보(建國大步)에 공헌하는 일이며 불순한 무리의 잘못된 발언을 중도에 걸러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김영철은 통역이라는 행위로 인민을 위한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영철의 사회주의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당시 좌익계열이 표방하던 구호인 일제 잔재의 청산과 봉건주의 타파라는 의식이 그의 대사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건한 민중운동가인 김영철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활동으로서 그의 적극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지만, <황혼>에서는 비난 이상의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해방공간의 희곡은 직면한 현실의 형상화를 통해 민족이 당면했던 제반 모순들을 작품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 현실의 고발과 현실에서의 민족적 열망을 새로운 자주적 민족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낙관적 전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낙관적 전망은 이론과 말에 불과한 소극적인 이상론으로, 사회개혁의 강한 의지만이 있는 막연한 관념적 전망이기도 하다. 여전히 해방공간 희곡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는 해방의 의미와 해방 후 정치·경제적 불안정이 가져온 사회적 혼란과 일제 잔재의 청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일 협력자의 청산문제이다. 이를 통해 좌우익의 이념을 넘어서 새로운 독립국가의 건설과 새로운 세대로의 이행을 젊은 조선을 향한 열망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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