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유진 쉬바르츠 '드래곤'

clint 2018. 5. 6. 18:26

 

 

 

 

 

용(龍)은 1942년 러시아에서 씌여진 작품이다. 작가 유진 쉬바츠는 이 작품을 쓸 당시에 이미 유모어 작가, 동화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때때로 어른들을 위한 연극으로 나찌 전체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한 매우 우스운 풍자 희곡작품을 쓰기도 했다.  [용] 은 발표된 그 해 단 세차례의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공연을 하지 못했다. 이 작품이 단순히 나찌 전체주의에 데한 풍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건 있을 수 있는 권력의 남용에 대한 혹독한 풍자와 비판임을 스탈린정권이 알아차리고 공연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 극의 이야기는 사백년동안이나 잔인한 용의 통치아래 있었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난다. 용은 이 도시의 주민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착취해 왔을뿐만 아니라 때때로 예쁜 처녀들을 잡아다가 죽이기까지 해왔다. 여기에 기사 란스롯경이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기사 란스롯은 아니다. 그 자신은 자기가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 란스롯의 먼 친척벌이 된다고 설명한다.) 용의 횡포로부터 마을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그는 용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란스로트경은 용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마침내 용을 죽이지만 자신도 심한 부상을 입어 사람들에 의해 어디론가 실려간다. 그가 사라지자 이 도시의 시장이 나서서 자신이 바로 용과 용감히 싸워 용을 죽인 그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도시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 용이 통치하던 때보다 더 가혹한 탄압을 시작하는데......

 

 

 

 

 

이 희곡은 우리가 잘 아는 원탁의 기사 란스롯트 이야기와 용과 싸우는 기사에 관한 서구의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슈바르츠는 권위주의적 정치권력구조 속에 도사리고 있는 병폐로서 하급관료들부터 정부 고위층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 군국주의적 성향, 일반국민들의 궁핍과 그들의 요구와 희망에 대해 위정자들이 드러내는 무관심, 그리고 권력층의 사치와 허영 등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슈바르츠의 희곡은 독재권력에 대한 단순한 비판으로만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권력지향적인 욕구와 독재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힘에 쉽게 굴복하고마는 개인의 성향까지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건설작업과 이념적인 순수성을 내세운 인권침해가 계속되었고 임박한 전쟁의 위협속에서 암울했던 1930년대와 40년대의 정치적 암흑시대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작가로서의 비판정신을 발휘함으로써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홀로 빛을 내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던 소련의 작가가 바로 안데르센의 동화나 전설, 신화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희곡을 쓴 에프게니 슈바르츠(Yevgeni Shvarts, 1897∼1958)다.
그는 [레닌그라드 아동극단]과 [니콜라이 아키모프 코메디 극장]에 오랫동안 관계했으나 아동잡지인 [Yozh](고슴도치)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1925년에서 1958년 죽을 때까지 약 12편 이상의 희곡작품을 썼다. 이처럼 아동문학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었던 슈바르츠였기에 주로 동화를 소재로 한 다분히 우화적인 작품들을 쓰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930년대와 40년대 당시의 소련사회가 NEP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신랄한 정치풍자 극은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경직된 풍토에 있었다는 점도 슈바르츠가 우화적인 아동극을 쓰게 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다. 이 시기는 스탈린이 그의 권력을 점차적으로 강화해 나가면서 1936년부터 1938년까지에 걸쳐 그 악명높은 대숙청작업을 벌임으로 해서 정치적 탄압이 극도에 달했던 때였다. 이 때는 또한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가장 강했던 시기였기에 슈바르츠로서도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슈바르츠는 1930년대 당시에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던 전체주의 및 군국주의 경향에 관심을 갖고 그의 희곡작품에서 권위주의적 통치의 속성을 규명하고 이와 관련하여 개인과 국가간의 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점들을 예리하고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작품들은 소련의 스탈린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국한되어 해석되지 않고 동시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체주의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되어질 수 있을 만큼 매우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