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로베르토 쥬코'

clint 2018. 5. 6. 17:41

 

 

 

 

<로베르토 쥬코>는 약 3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성격이 규정된 20명의 인물과 남자들, 여자들, 창녀들, 포주들 등으로 등장하는 주변의 인물들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 많은 캐릭터들이 남.녀 주인공을 제외한 7명의 배우가 각 장에서 번갈아 가며 소화한다. 이 익명의 인물들은 때로 닮아 있고, 때로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장면이 진행될 수록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들의 연기 변신에 또 한 번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총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은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서로 만나거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단절적으로 전개되고 전환된다. 공간과 시간은 생략과 비약을 거듭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이 만나고 충돌하는 사이에 시·청각적인 무대미학이 연출될 것이다. 미니멀하고 초현실적인 공간창조와 함께 빛과 사운드의 조화로움은 대사 고유의 울림을 더욱더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이 극의 주인공인 로베르토 쥬코는 아버지, 어머니, 형사, 어린아이를 살해한 살인자이다. 그는 두 번의 투옥과 두 번의 탈옥을 감행할 만큼 괴기스러운 사나이이며 또한 신화 속의 이카루스이다. 로베르코 쥬코는 태양에도 성기가 있고, 그 성기 안에 바람의 근원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다.표면상으로는 우리와 다른 살인자이다. 그러나 로베르코 쥬코가 우리와 아주 별개의 사람일까? 요즘 언론매체를 보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살인과 자살이야기이다. 이렇듯 로베르코 쥬코는 연극에만 존재하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니라 현대인의 고독과 폭력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로베르토 쥬코의 모델이 된 수코는 14세에 부모를 살해하였고 정신병자로 판명되어 정신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았다. 수코는 정신과 치료를 통해 정상의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사회에 복귀하나 다시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된 후, 비닐 봉지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감방에서 자살하였다. 수코의 자살 방식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방식, 즉 비닐 봉지에 의한 질식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콜테스는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연쇄 살해범을 찾는 수코의 몽타주를 보게 되었고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지하철역에는 각기 다른 4장의 수코의 몽타주가 붙어 있었는데, 이 4장의 몽타주는 한 인물이 아닌 각기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될 만큼 다른 면모의 수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콜테스는 수코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수코는 이탈리아에서 체포된 후 하루만에 탈옥을 시도하며 감옥의 지붕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다 지붕 위에서 떨어지며, 이 장면은 TV에 생중계 되었다. 이를 우연히 시청한 콜테스는 수코라는 살인범에 강한 관심을 표명하며 자신의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으로 수코를 채택하게 된다.

 

 

 

줄거리
아버지를 살해하고 투옥중인 쥬코는 다시 탈옥하여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마저 살해한다.
복잡하고도 어두운 가정에 한 소녀와 사랑을 나누고 난 후, 쥬코는 또 한차례의 살인, 우울한 형사를 죽이게 된다.
쥬코에게 순결을 잃은 소녀의 오빠는 사실을 알게되어 더 이상의 정절은 필요 없다며 소동을 일으킨다.
한편 쥬코는 통행시간이 지난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놓친 노신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불안에 떨고있는 노신사를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로 안심시키며 아침을 맞는다. 쥬코를 찾아 떠나려는 소녀와 그녀를 설득하는 언니사이에 작은 의견차이가 생기게 되고 언니의 걱정에도 소녀는 집을 나간다. 그 주위의 모든 상황과 현실에서 떠나고 싶은 쥬코는 그의 이상세계인 눈 오는 아프리카를 꿈꾸며 방황하게 되고 그런 그를 보는 사람들은 쥬코를 미친 사람 취급하게 된다. 대낮의 공원에서 쥬코는 우아한 부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순간 떠나려는 욕구와 살인의 충동으로 그녀의 아들을 죽이고 부인을 인질로 그곳을 떠난다. 쥬코를 찾겠다는 일념 하에 소녀는 쁘띠 시카고의 창녀촌으로 그녀를 팔려는 오빠에게 순순히 응한다. 기차역에서 쥬코는 떠나려 하고 그 모습만은 순수했기에 그를 사랑한 부인을 남긴 채 쥬코는 멀어져 간다.
쁘띠 시카고의 거리에서는 창녀들과 그 속의 소녀가 있고 순경들의 순찰이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나타난 쥬코는 소녀를 만나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경찰에게 순순히 체포당한다.
감옥에서 쥬코는 또 탈옥하게 되지만 이제는 세상 속으로가 아닌 태양 앞에 서게 되고
그 곳으로 날아가는 이카루스처럼 그는 날지만 떨어지게 된다.

 

 

 

쥬코는 35년 전 자신의 부모를 비롯해 무차별적인 살인으로 유럽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가까운 지인에게는 물론 마구잡이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대한민국의 서린 기운 역시 만만치 않다. 극 속에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쥬코 외의 인물에도 폭력이 만연해있다는 점이다. 쥬코와 애증을 주고 받는 여자아이는 특히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 동생에 대한 삐뚤어진 애정으로 점철된 오빠에게 무차별적인 폭격을 당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찌든 어머니와 그녀의 언니는 절대 구원자가 되지 못한다. 그들 역시 폭력의 관성에 익숙해져 있고, 자신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비난,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여혐'이 난무하는 2016 한국 사회의 판박이다. 
'로베르토 쥬코' 속 남자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찌질하고 비겁한 '한남'(한국남자)이다. 여자아이의 오빠는 그녀를 사창가에 팔아넘기고, 돈을 손에 쥔 채 죄책감에 운다. 지지리도 못난 나르시시즘이다. 여자아이의 순결을 빼앗고, 아이를 죽이고, 아이처럼 엉엉 우는 쥬코 역시 그가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소심한 남자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연극에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라는 이름은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처럼, 더 나아가서 하나의 ‘신화’처럼 여겨지고 있다. 또한 그의 연극은 30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47개 국가에서 공연될 정도로 프랑스를 넘어서서 지속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으며, 콜테스는 어느덧 최근 20여 년 동안 가장 많이 읽히고 공연된 프랑스 작가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른다. 1989년 에이즈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가 남긴 6편의 연극들은 공연이 거듭될수록 그것들이 지닌 의미의 울림을 더해가고 있으며, 사후에도 그의 초반기 습작들과 각색 작품들, 소설, 에세이 등이 꾸준히 출판되면서 ‘콜테스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콜테스의 고통스럽고 강렬했던 삶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준다. 1948년 프랑스 동부의 메츠에서 태어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거치며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사춘기 시절 막판부터 극심한 혼란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며, 이때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난 어떤 영원한 정신적 불균형 속에서만 미래를 받아들여요. 그러한 미래에 있어서 안정이란 죽은 시간일 뿐 아니라 진정한 죽음이죠.” 닫힌 세상으로부터 느끼는 권태, 프랑스 내외부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충격, 그리고 뉴욕과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접한 새로운 세계 등은 콜테스가 성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불균형’과 고통을 체험하게 한 요인들이었다. 고전 희극작가 몰리에르와 요절한 천재 시인 랭보를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운 그가 연극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마리아 카자레스가 공연한<메디아>를 통해서였다. 이후 그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연극 학교에서 연출과 각색을 시작하며,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고리키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20대에 공산당 입당과 탈당, 한 차례의 자살 시도, 마약 중독으로 인한 약물 치료 등의 사건을 거친 콜테스는 여전히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그가 택한 것은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한 방랑이었다. 그는 비(非) 서구문화권 나라들을 방문하며 흑인과 동성애, 레게와 랩 음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콜테스의 시선은 이렇듯 그가 속한 ‘지금-여기’의 문화와 사회가 아닌 ‘다른 곳’과 주변인들을 향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작품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투영된다. 1979년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Patrice Chéreau)와의 만남은 극작가 콜테스에게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콜테스의 작품에서 동시대인의 은밀한 욕망과 고독, 그리고 독창적인 연극적 글쓰기를 발견한 셰로는 그를 중앙 무대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콜테스의 대표작이 될<검둥이와 개의 싸움>,<서쪽 부두>,<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사막으로의 회귀>등 네 작품을 성공적으로 공연함으로써 유럽 연극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그러나 1983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에이즈의 징후는 콜테스를 차츰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는 끝내 1989년 파리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미소년 같은 순수한 얼굴 속에 깃들인 고독과 반항, 비극적 운명, 고통스런 절규와도 같은 그의 텍스트...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 콜테스라는 이름은 차츰 이러한 의미들을 내포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으며, 특히 젊은 세대들의 반응은 일종의 콜테스 신화를 형성할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연극인들에게 또한 ‘콜테스의 재발견’은 80년대 이후 하나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와 공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콜테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프랑스 연극은, ‘연출가의 시대’ 또는 ‘공연의 시대’라고 할 만큼 대작가의 부재가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2차대전 이후의 연극을 주도해온 사뮈엘 베케트 등의 이른바 ‘부조리 연극’은 애초부터 공통된 연극적 전망을 표방하지 않은 독자적인 작업이었고, 쥬네의 제의적인 텍스트들도 연출가의 역량과 무대가 뒷받침될 때만이 공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콜테스가 지니는 연극사적 의미는 80년대 이후 프랑스 연극계에 다시금 ‘작가의 시대’, 그리고 ‘텍스트의 시대’를 열어놓은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극작가와 연출가, 문학과 공연 사이의 해묵은 논쟁과 대립의 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콜테스에게 있어서 말과 행위는 애초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었으며, 거침없고 정확하면서도 울림이 풍부한 그의 글쓰기는 분명 연극적 리듬과 움직임을 내면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연극은 현대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 - 전쟁, 차별, 억압, 소외, 고독... - 을 다루면서도 현상적인 관찰을 넘어서 개인과 집단, ‘나’와 타인의 관계가 지닌 뿌리깊은 욕망과 갈등을 보여준다. 콜테스 연극은 결국 ‘짐승의 시간과 공간’ 속에 홀로 떨어진 개인이 고통스럽게 길을 찾으며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절박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닌 신비로운 힘과 호소력은 세계의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