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의 묘소를 찾아 술을 올리고 통곡을 했다는 이유로 유림의 비난을 받았던 선비 임제의 19대손인 대학 강사 임규는 박사논문의 주제를 황진이의 시와 생애로 잡는다. 황진이를 연구하면서 자연히 당대의 여성들의 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바리데기 설화에 나타나는 딸 버리기와 황진이의 처녀시절 등 인터넷에 몰두하다가 임규는 황진이를 만나서 왜 기생의 삶을 선택했는지를 묻는데 황진이는 그 대답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소개한다. 임규의 꿈속 같은 무대에 신사임당이 허난설헌과 함께 나타난다. 이들 세 여인이 자신들의 처녀 시절의 꿈과 소망을 담은 생애를 이야기한다. 황진이는 임규를 유혹하고 임규는 황진이를 사모한다.
현실에서 임규는 자기가 인터넷에서 세 여인을 만난 것을 기억해 낸다. 임규의 아내는 남편이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고 인터넷에서 황진이와 섹스를 할 뻔 했다는 얘기를 듣고 황당해 한다. 남편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쳐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임규는 아내와 다투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터넷 세상으로 도피한다. 가상 현실에서 다시 세여인을 만나 그들의 결혼생활과 남성중심의 조선 사회의 가족제도를 체험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임규는 아내가 세여인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란다. 신사임당처럼 생활에 충실하며 남편을 위하는 모성애. 황진이와 같은 유혹적인 몸매와 섹스에 대한 관심, 그리고 허난설헌처럼 독립하려는 욕구가 고루 갖춘 현대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내의 요구로 임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된다. 병동에서도 임규는 현실과 가상현실을 드나들면서 시간여행을 하는 정신병자가 된 것이다. 정신과 의사의 권고로 임규는 사이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들의 고민과 모순된 가족제도, 여성 억압구조의 사회를 깨닫게 된 임규는 병이 나아간다. 정신과 여의사는 아내에게 말한다.
임규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귀여운 남자라고....

‘세 여인’ (2005.4)은 극단 신화에 의해 아르코대극장(당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김영수가 연출을 맡았다. 여기서 세 여인은 조선시대의 황진이, 신사임당, 허난설헌을 일컫는다. 이 여인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 특히 여성 대 남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사생활과 함께 추구한 작품이다. 본격적인 페미니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이라는 동시대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30대의 청년 임규와 그 아내 미니를 등장시켰다. 여기서 임규는 내레이터이자 꿈꾸는 등장인물, 마지막에는 정신병환자 역할로 등장한다. 임규는 ‘세 여자의 성적 정체성’을 규명하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젊은 역사학도이다. 논문 작성에 골몰하다가 심한 스트레스로 발기부전을 일으키고, 몽유병자 같은 환상과 환청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그는 정신병동에 갇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가 환상과 환청에 시달릴 때마다 세 여인들의 삶이 재연된다. 황진이는 기생의 딸로서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지만 여성의 노예적 관행에 순응하기보다는 성의 주체자로서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가 만난 벽계수, 이사종, 소세양, 서화담 등과 대등한 관계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신사임당은 이원수와 전통적으로 부부를 맺어 7자녀를 낳아 길렀다. 남편의 외도에고 불구하고 가정을 성실하게 지켰고, 이율곡 같은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 어떠한 상황에도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현모양처의 입장이 그녀의 주체성이었다.
이 두 여인에 비해 매우 착잡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이 허난설헌이다. 남편 김성립은 인동 김 씨의 아들로서 사회적인 일에는 무관심이고 주색잡기에 빠졌다. 자식을 둘이나 낳았지만 모두 죽었고 하나는 유산했다. 게다가 아버지 허엽, 큰오빠 허성, 작은오빠 허균으로 이어지는 동인 친정기문의 몰락은 그녀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그녀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다가 30대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 작품에서 청년 임규의 태도와 세 여인의 태도는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성적 콤플렉스에 벗어나지 못한 임규는 결국 정신병동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작가는 바리데기 설화와 고려장의 설화를 작품의 전후에 배치함으로써 ‘버림받는 인생’의 실존성을 부각시켰다. 누구나 성의 주체자가 되었을 때, 생존의 가치를 발견하고 누릴 수 있다는 의미를 시사해준다.

작가의 글 - 윤대성
여성만이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인간 창조의 주역으로 알던 시기에는 모계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지식이 발견되어 출산에 남성의 역할이 알려지자 父性을 주장하며 가족이라는 배타적 제도를 만들어 가부장제가 형성되면서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처럼 여겨져 억압, 복종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대를 잇는다는 구실로 남성의 혈통을 유지하는 것이 여성의 의무가 되어 버린 이후 세계는 남성중심의 권력기관(국가, 정부)으로 변했고 남성끼리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로 바뀌었다. 전쟁과 살육,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앞세운 테러, 이 모든 인류의 불행은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이제 세상은 또 한번 변화해야 한다.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여성성이 우선하는 세계로... 21세기를 맞아 이미 지구 곳곳에 변화의 물결이 감지되고 있다. 여성 대통령, 여성 수상이 등장하고 여성 정치인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크게 들려 온 적도 없다.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들어서 있다. 차기에 여성 대통령이 나올 확률이 그 언제보다 높다. 그렇다고 당장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제부터 차츰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미 우리 가정의 일부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절대적인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가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남성 중심의 전쟁과 살육의 세계에서 여성중심의 사랑과 평화의 세계로 이 명제가 이 작품의 숨어있는 주제이며 작품의 집필의도이다.
이번 작품을 구상하면서 고민했던 점은 우리 조선의 대표적인 여성인 신사임당과 황진이 허난설헌을 어떻게 한 무대에 현대 여성과 함께 세우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용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나 형식에서 벽에 부딪쳤다.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까지 세 여인과 만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러다가 돌연 왜 꿈속 무대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세계를 작품의 구조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면서 장자의 "나비의 꿈"과 "시간여행"에 대해 생각이 미쳐 그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그러나 막상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꿈이란 내 생각이 연출자의 해석으로 사이버 세계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어 온라인의 세계가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런 해석이 오히려 관객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 싶어 양보해 작품을 몇 군데 수정했으나 그 과정에서 잘려 나간 주옥 같은(?) 대사들이 아직도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작가의 순수한 생각들을 원본 그대로 나타내기엔 연극이란 장르가 이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연출가와의 논의 과정에서 타협하고 배우에 의해 다르게 표현되는 등... 앞으로의 내 작업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내가 직접 연출을 하던가 소설을 쓰던가 아니면 읽히기 위한 희곡을 쓰던가... 여러 가지로 생각 중이다.
이번 작품을 공연하면서 고생이 심했을 김영수 연출가와 출연한 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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