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은 1945년 8월15일 오전 한나절의 이야기다.
극 중 공간은 창경원, 지금의 창경궁 후원에 있는 춘당지이다. 등장인물은 영화배우들과 스태프, 제작자 등이다. 그들이 찍는 영화는 ‘사쿠라는 피었는데’라는 제목의 문예영화다. 아비가 자식에게 전장에 나가라고 명하는 대사로 미루어 보아, 영화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태평양전쟁 지원을 장려하는 선전영화인 듯싶다. 연극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촬영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대 소동을 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견해 차이로 배우와 감독 사이에 실랑이가 일어나 촬영이 지연되는 가운데, 방금 일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영화제작자가 촬영 현장에 도착한다. 그는 영화가 경성과 도쿄에서 동시 개봉될 거란 소식을 전한다. 이를 발판으로 만주에서 차기작을 촬영할 계획이라는 소식에 배우들은 다들 환호하며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감독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한다. 후임 감독 자리를 두고 작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나, 이내 갈등이 봉합되고 영화는 차질 없이 마무리되는 듯하다. 하지만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전해진다. 그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의 재미는 이 정신 빠진 인간들의 예술론에서 나온다. 영화를 찍는다고 영화의 위대함, 연기란 무엇인가? 에 대해 논하고, 배우의 품격과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영화인들의 숭고함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은 전부 헛소리라는 것이 골자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단어 하나 ('굴신-팔과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함.'이라는 단어) 영화 이론 하나 일본에서 그대로 가져오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도쿄의 유명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다는 영화제작자의 아들이 아버지뻘인 중견 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장면이 진짜 백미. 허리 굽혀 "선배님, 선배님, 부탁드립니다!"를 되뇌지만 사실 이건 모욕이나 다름없다. "찌르고 굴신 힘주고 내딛고"를 외치며 영화제작자의 아들이 하라는 대로 연기를 하니 신체 동작이 엄청 부자연스러워지는데도 모두 "스바라시'를 외친다. 훔... 항문에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몸소 시범까지 보이는 제작자의 아들. 급기야 항문에 젓가락을 꽂고는 청춘스타에게 빼보라고 권유한다. 슬쩍 손만 대고서는 우렁차게 "안 빠집니다!!!"를 외치는 청춘스타.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려 하는데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모두 일기예보를 듣기 위해 영화제작자가 곱게 보자기에 모셔온 라지오를 켜는데 그 안에서 일본 천왕의 항복 선언문 낭독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 해방의 그날이 온 것이다. 영원히 해방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 찾아온 해방은 갑작스러운 폭우처럼 느닷없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모든 허망한 꿈이 다 사라지고 현실이라는 비에 온몸이 젖을 수밖에 도리가 없는.

제목이 왜 <해방의 서울> 일까? 답은 유시무종 有始無終.에 있다. 자주적으로 싸워서 얻어낸 독립이 아닌 어부지리로 얻게 된 해방이었으므로. 독립운동은 분명 있었는데 그 뜨거움은 분명 존재했는데 그 끝은 간 곳이 없다. 잘못의 인정과 반성, 속죄가 없는 역사의 시작이 바로 해방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연극이었다. 조선 사람은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다던 기무라 사장의 말. 유시무종 有始無終의 의미를 우리가 끝낼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모르겠다. 아마 오지 않겠지. 하지만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일제 강점기 시대를 다룬 예술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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