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성희 '꿈속의 꿈'

clint 2017. 12. 22. 15:08

 

 

 

줄거리
어느 날 보희는 ‘서악에 올라 소변을 보니 온 경주 고을이 자기 소변으로 덮이는’ 꿈을 꾼다. 자매는 세상의 주인이 되는 꿈이라 농하면서 꿈을 사고파는 놀이를 한다. 동생 문희는 연인이 남모르게 선물한 왕족만이 입는다는 치마 한 감을 언니 보희에게 꿈 값으로 치른다. 보희는 그깟 꿈의 불확실, 희망의 반영에 불과한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욕망을 직접적으로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왕가의 천을 흔쾌히 택한다. 보희가 꾼 꿈은 이제 문희의 것이 되었다.
한편 김유신은 기회를 엿보던 중 축국 놀이를 하다가 떨어진 김춘추의 옷깃을 이용해 자신의 책략을 펼친다. 누이들과 김춘추를 맞대면시키려는 것. 보희는 평범한 여인으로 춘추를 만나기보다는 국사를 대등하게 논할 관계로서 김춘추와 분명한 대면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보희는 오빠 김유신의 의도를 고소하며 거절한다.
이로써 보희 대신 문희가 김춘추의 옷깃을 꿰매게 되고 김춘추는 김유신의 야심을 눈치 채면서 남자들끼리의 거래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김춘추는 자신이 제일 권력자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화랑들의 추종과 조직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유신의 치밀한 계책과 김춘추의 욕망에 휘말린 문희는 사내들의 계획대로 혼인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망국 가야의 후손 김유신은 말한다. “가야의 못다한 국운을 신라를 통해 이루리라. 기생충이 뱃구레에 들어앉아 숙주를 조종하듯 내가 신라의 뱃속 깊이 들어앉아 신라를 내 뜻대로 몰고 가리라. 나 자신이 신라가 되리라.” 그리하여 그는 김춘추를 향해 운명의 시위를 당긴다. “성골이 아닌 진골 품계, 술이나 마시고 축국에 미쳐 있지만 곧 춘추의 시간이 온다는 것을 훤하게 궤뚫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꿈속의 꿈>은 김유신의 야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때때로 광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야 권력을 향한 오라비의 사다리로 이용되는 두 동생의 희생과 갈등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유신의 카드는 언니 보희였다. 하지만 보희는 저항한다. “네 꿈을 이뤄주마라며 속삭이는 오라비에게 고만 두세요. 제 꿈은 제가 꾸겠습니다라고 쏘아붙인다. 보희는 춘추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면서도 거기에 정략의 때가 묻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기회는 문희의 것이 된다. “서악에 올랐어.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어. 바람을 들이마셨더니 아랫배가 꽉 차올랐어.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어. 오줌이 콸콸 저 아래 서라벌을 온통 잠기게 했어.” 문희는 언니에게 치마를 벗어주고 그 이상한 꿈을 산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른바 매몽설화(買夢說話). 그것이 연극의 모티브다. 작가 장성희는 그 설화 속에 숨은 진실, 오라비의 야망에 이용되는 두 여인의 어긋난 삶을 일단 연극의 전면에 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구조일 뿐이다. <꿈속의 꿈>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연극의 웅숭깊은 매력은 껍질 속에 숨었다. 보희의 숨은 꿈은 영원히 춘추였다. 춘추도 마찬가지였다. 당나라에 볼모로 끌려가는 보희가 내 마음 묶어두었던춘추를 향해 작별을 고하는 순간, 춘추는 그대는 내 꿈이라며 절규한다. 오라비가 입혀준 날개옷을 입고 왕비 자리에 오른 문희도 마찬가지였다. 여인으로 최고의 자리를 꿈꿨던 그의 숨은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름 없는 화랑 미곤이었다. 문희는 전장에 나갔다 주검으로 돌아온 미곤의 상여에 자신의 쪽빛 치마를 덮어주며 당신은 내 꿈이었습니다라고 오열한다.

 

욕망은 과연 내 것인가? 작가 장성희가 1500년 전의 인물들을 무대로 끌어올려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그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니다. 내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던 욕망은 결국 타자에 의해 강제되고 주입된 것일 뿐. 그래서 나의 정체성과 욕망 사이에는 어쩌지 못할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가면을 쓰고 그 위에 또 다른 가면을 쓰기도 한다. 이 연극이 묘파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바로 그렇다. 그래서 연극을 꼼꼼히 지켜본 관객은 욕망하는 나여, 너는 정말 나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늙은문희는 준엄하게 외친다. “사관은 적으라. 나 태종무열왕의 아내 문명왕후는 이른다. 나 상대등 김유신의 동생 문희는 이른다. 나 서현 각한의 딸 아지는 이른다. (내 아들) 문무왕이 왕위에 오르니 이름은 법민이고 태종왕의 맏아들이다.” 그것이 연극의 마지막이다. 모든 욕망을 다 이뤄낸 듯한, 마치 인생의 승자처럼 보이는 여인. 그가 마지막으로 교태를 부린다. 그러나 그것은 문희의 가면(假面)일 뿐.

 

 

 

 

 

 

연극 <꿈속의 꿈>은 삼국유사 紀異(기이) 1. 태종 춘추공과 보희, 문희 간의 매몽설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 속 설화가 승자의 기록, 영웅의 내력담을 강조하고 있다면, 연극 <꿈속의 꿈>은 서로 꿈을 사고파는 자매를 통해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김유신의 욕망의 사다리로 이용된 자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사건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물들의 인간적인 꿈과 상실과 야망과 회의, 그리고 사랑과 상처를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자매간의 매몽의 행위를 시각으로 가져온 김유신의 정치적 야망과 이를 통한 두 여인의 삶을 치밀하고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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