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용설화를 토대로 한 <팔곡병풍>은 신라를 위해 뭍에 올라온
용왕의 아들 용칠과 그를 시기하는 역신 호귀마마의 갈등,
두 천상의 인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낭자의 인간적인 고뇌를
우리 한민족의 기질과 사상이 반영된 한풀이 굿으로 펼쳐지고 있다.
물의 여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서는 용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용칠과 그의 운명을 대신 짊어지고 고행하게 되는 낭자,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이 파괴해 버린 용칠과 낭자의
사랑을 다시 찾아주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호귀마마의 삶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심성을 보여준다.

〈팔곡병풍〉은 『삼국유사』의 처용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용왕의 이들인 처용은 밤늦게 귀가하다 아름다운 아내와 역신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는 ‘처용가’를 지어 부른다. 처용의 관용에 감복한 역신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화상만 보아도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약속하고 물러난다. 작품은 이상의 처용설화에다 설화의 후일담이 덧대어져 구성되었다. 작품은 ‘개운포’, ‘호귀마마, ‘별곡’, ‘왕생극락’, ‘금왕산다리’의 다섯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두 장면이 설화의 본체에 해당한다면, 뒤의 세 장면은 설화의 후일담이다. 후일담은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창조해낸 허구적 이야기로, 작품의 무게중심은 실상 이 후일담에 놓여 있다
‘별곡’ 장면에서 처용가면으로 인해 역병을 옮기지 못하게 된 호귀마마(역신)는 파파노인의 모습으로 낭자(용칠의 아내)와 함께 심산유곡에 숨어산다. 그는 절간 부목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부목은 그 대가로 낭자를 취한다. 호귀마마의 초가에 당도한 용칠은 낭자의 사정을 듣고는 부목을 처치할 계책을 꾸민다. 그러나 용칠은 도리어 부목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어 ‘왕생극락’ 장면에서는 처용의 죽음을 애도하는 넋 굿이 벌어지고 ‘금왕산다리’ 장변에서 낭자는 명부로 들어가 용칠을 되살리려 한다. 호귀마마의 희생으로 결국 용칠은 환생하게 되지만, 그것은 육신 없는 신주의 모습일 뿐이다. 낭자가 신주를 물에 띄움으로써 용칠의 넋은 용궁으로 돌아가고, 극은 막을 내린다.

작가는 삼국유사의 신화적 소재에다 굿이라는 제의적 형식을 접목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의 원형적인 심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그 원형적인 심성은 구체적으로 ‘신과 인간의 사랑’ 이라는 설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은, 바다의 신과 인간이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힘으로 역신마저 포용한다는 설정에 기초해있다. 이는 곧 성과 속, 외부와 내부, 자아와 타자의 것이 혼융되고 습합되는 용광로와도 같은 상생의 민족성을 드러낸 것으로 읽힐 만하다 “우리 반도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 뭐냐 삼면이 바다라는 거 아닙니까, 동해 용왕의 자식이 인간을 사랑하고 바다와 인간이 만나고"라는 작가의 술회 또한 이러한 해석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와 관련해 ‘왕생극락’과 ‘금왕산다리’의 마지막 두 장면이 특별히 주목된다. 작가는 용칠과 낭자의 사랑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용칠을 죽게 한 뒤 낭자로 하여금 넋굿을 통해 명부를 여행하게 한다. 그 결과 낭자는 용칠의 환생을 약속받게 되지만, 정작 그녀가 얻은 것은 용칠의 육신이 아니라 신주일 뿐이다. 요컨대 이 사랑이야기는 연인의 죽음 → 명부 여행 → 연인과의 재회와 이별의 도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의 구도는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화’를 연상시킨다. 신화에서 아폴로의 아들인 오르페우스는 불의의 사고로 아내 에우리디케를 잃게 된다. 그는 아내를 찾아 저승인 하데스를 여행하게 되고, 아름디운 리라 연주로 지하의 여왕을 감복시켜 아내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하데스의 입구에서 지하의 계율을 어긴 탓에 그는 아내를 영원히 잃고 만다. 서구 예술의 단골 소재로 자리 잡은 이 오르페우스 신화는 여러 면에서 〈팔곡병풍〉의 성격과 겹친다. 첫째, 연인의 죽음 → 명부 여행 연인과의 재회와 이별이라는 이야기 구도가 동일하다. 둘째, 신의 아들이 인간을 사랑하여 아내로 맞는다는 설정 또한 유사하다. 셋째,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한 원인이 금기의 위반이라는 점도 같다. 응시의 금기를 어긴 탓에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영원히 앓게 되고, 역병의 금기를 어긴 (호귀마마에 대한 연민) 탓에 낭자는 용칠의 신주만을 얻게 된다. 이러한 점을 종합할 때 우리는 〈팔곡병풍〉을 지배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근본적으로 오르페우스 신화에 의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오태석 작품에 나타난 ‘명부 여행’ 화소의 기원을 ‘오르페우스 신화’가 아니라 ‘바리데기 설화’에서 찾을 수도 있다. 우리 서사무가의 원본설화인 바리데기 설화에서도 명부 여행의 화소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바리데기의 저승 여행은 효심의 발로이지 연정의 발로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시련극복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지 사랑하는 망자와의 재결합을 위한 설정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태석 연극의 명부 여행 화소를 ‘바리데기 설화’의 샤먼 전통과 연관 짓는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보다는, 신과 인간의 사랑을 극화하는 작가의 상상력에 오르페우스의 신화가 영감을 제공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한편 신화적인 화소의 측면뿐 아니라, 제의적인 형식의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서구 전통의 영향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을 지배하는 형식은 굿의 형식이다 ‘왕생극락’ 장면이 이러한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굿의 재현과정에 ‘영혼결혼’의 의례가 포함된 점이다. 낭자가 용칠의 영혼을 만나고 그의 영혼을 찾아 저승을 여행하는 것은 이 영혼결혼의 의례를 통해서이다 본래 영혼결혼은 총각이나 처녀가 죽은 이들을 짝지어줌으로써 원혼을 달래기 위한 의례이다 미혼자는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므로 죽은 후에도 사후세계에 통합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되어 산자들을 해치게 되므로,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사후결혼을 거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태석의 작품에 나타난 영혼결혼은 이러한 본래의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팔곡병풍〉에 삽입된 영혼결혼은 미혼의 남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혼례가 아니라 기혼의 부부 사이에 이루어지는 혼례이다. 또한 망자들의 혼례가 아니라 생자와 망자 사이의 혼례이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에 재현된 결혼의례는 미혼의 망자들을 짝지어주기 위한 의례가 아니라, 사랑하는 망자와의 재결합을 비는 의례라고 할 수 있다. 망자의 원혼을 달래는 만가의 성격보다는 생자의 못다한 사랑을 달래는 연가의 성격이 강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팔곡병풍〉에 나타난 영혼결혼 의례의 원형을 다시 오르페우스의 제의 전통에서 찾을 필요를 느끼게 된다. 죽은 아내를 찾아 하데스로 하강하는 오르페우스의 행위는 그 자체로 사랑하는 망자와의 영원한 재결합을 희구하는 일종의 ‘영적인 혼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르페우스의 신화는 이후 오르페우스 비교(秘敎)의 영혼결혼 의례를 정착시킨다. 기록에 따르면, 오르페우스 교도들은 입사의식에서 일종의 ‘신성결혼’ 의례를 연출하였다 그 과정은 신참자에게 신부의 베일을 씌운 뒤 그 앞에 남근과 뱀의 형상이 든 바구니를 가져다놓는 식이었다. 이러한 의례를 통해 신참자는 오르페우스 신과의 영원한 영적 결합을 상징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참자는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윤회를 거듭하며 영생을 얻기에 이른다.

이렇게 볼 때 오태석의 작품에 나타난 영혼결혼의 의례는 그 형태나 목적에 비추어 샤머니즘의 의례보다는 그리스 비교의 의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혼결혼의 의례를 통해 낭자는 죽은 용칠과 영원히 재결합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결합은 육체적인 욕망과 인간적인 연민을 모두 버렸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정신적인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낭자가 용칠의 육신이 아니라 그 신주만을 되찾게 되는 대목은 이러한 교훈을 담고 있다. 결국 작가는 천지만물과의 조화로운 상생(相生)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원형적 심성을 ‘신과 인간의 영원한 혼례’라는 지극히 그리스적인 전통을 벌어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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