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여자가(歌)'

clint 2017. 12. 20. 18:17

 

 

 

<여자가>(1985)는 가부장제 사회의 희생자인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희생자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오태석의 사추기>(1979)와 유사한 맥락에서 조망이 가능한 작품이기도 하다. <여자가>에서 20대의 새댁인 영주는 지독한 가부장적 억압 상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가부장적 도덕률과 관습을 강요하는 시부, 시모 시숙, 동서, 시누이, 남편(동호)에 둘러싸여 숨 막히는 결혼생활을 영위한다. 그의 이러한 결혼생활은 무대 디자인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가구, 수의 등 무대 대, 소도구는 실물보다 훨씬 크게 표현되어 있어서 무대 위의 사람을 왜소하게 만드는데, 이는 가부장적 관습과 도덕률이 인간 삶을 억압하는 극중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다. 유교적 규율을 강요하는 여자가를 암송하게 하고 매질을 가하는 시어머니, 아내 영주와 동거녀 미숙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동호, 그리고 시어머니를 펀드는 동서와 시누이 등은 한 집안의 며느리인 영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이 극은 단순한 여성주의 연극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아들 동호를 금치산자로 만들어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게 되는 시부와 동호 모자의 대립이 얽히면서 치정과 재산분쟁이 소재가 되는 멜로드라마로 비화해 버린다.

 

 

 

 

 

남성의 폭력성이 다소 과장스럽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작품 근간에서는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이 흐르고 있다. 또 무당굿의 요소를 활용하고 여자가라는 전통 시가를 도입한 점에서 전통연희를 수용하려고 노력한 긍정적 요소를 볼 수 있다.

듣거라 네 듣거라/ 새 각시 본분을 네 듣거라 / 부부유별 있었으니 남편 대접 극진하라. / 전생인연으로 배필 되었으니 백년고락이 이 사람에 매었도다 / 숭숭군자 못하여서 만일 한번 눈에 나면 독수공방 찬방에 뒤를 의지하잔 말가” 

같은 여자가의 암송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부장적 억압에서 희생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웅변한다.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여성을 가부장제 사회의 희생자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멜로드라마의 한계에서나마 여성주의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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