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진호 '달나라와 딸꾹질'

clint 2017. 12. 6. 15:13

 

극단 '거론' 35회 공연  엄경환 演出   삼일로 창고극장 1979.8.24-8.31   

부제: 토악-질

 

줄거리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이 그저 신문만 계속해서 읽고 있는 남편 마정욱을 향해 아내 정신자가 자꾸만 무언가라도 얘기를 할 것을 요구한다. 마정욱, 마치 현실의 세계가 낯설기라도 한 듯 정신없는 가운데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한다. 정신자, 마정욱에게 교회 부흥회에 갈 것을 강요한다. 마정욱 괴로워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지치고 나이 들게 만든 많은 요소들을 길게 나열한다. 갑자기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마정욱의 주위를 맴돈다. 마정욱, 신문지 뭉치로 파리를 잡으려 온 방안을 뛰어다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이번엔 몽둥이를 들고 쫓아간다. 파리가 아내 정신자의 머리 위에 앉자 마정욱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이내 내리치고 만다.

마정욱, 늙은이가 되어 벤치에 앉아 있다. 어느 젊은 여학생이 나타나 그 옆에 앉는다. 마정욱은 쓰러져 죽어간다. 그러나 여학생은 마정욱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밤늦은 시각, 어느 경찰관이 마정욱의 주검을 발견하고 동료와 함께 시신을 옮겨간다. 무대 위에 여러 사람이 나타나 생의 의미와 비극과 슬픔과 죽음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실로 승화(昇華)된 완전한 죽음에 이르는 오랏줄을 잡기 위해 많은 이들이 쓰러져 가지만 아무도 그곳에 닿지 못한다.

 

사실상 전진호의 마지막 희곡으로서 기존의 창작법과는 전혀 다른 부조리극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그가 고국에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창작을 했다면 박조열 이재현 오태석 윤대성 이강백 류의 희곡을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 예각이 기존의 작품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작가적 변모를 보인 출발임과 동시에 마감인 것이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 가 와 나의 의식의 흐름을 추적해가는 수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남편 가에게 관심을 끌어드리려는 아내 나 와의 사이에 일상적인 언어와 생활이 단절되어 있음을 보여주면서 피곤하고 고독한 현대인들의 삶을 추적해가고 있다. 몇 개의 단어들의 연결만으로도 그들의 의식 추적이 가능하다.

작품 줄거리는 곧 단어들을 따라 형성되었다 신문 방문 사랑 부흥회 정어리 통조림 결혼 우리를 늙게 하는 것 대기오염 슬픔 죽음의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 가 는 자기의 집에 들어오면서도 방문자처럼 노크를 한다. 부인 나 의 물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들어오자마자 신문을 읽는 데만 몰두한다. 나 가 왜 노크를 하고 들어왔느냐는 질문에 가 는 당신이 부흥회에 갔나 안 갔나 해서라고 대답한다. 호리존트 사람의 뇌와 구겨진 신문지를 대비시킨다. 복잡한 사회생활에 지쳐 사랑이 식었음을 암시한다. 뼈 없는 정어리 통조림을 저녁 식탁에 올린다. 나 는 가볍게 헛구역질을 한다. 임신과 출산을 걱정한다. 호리존트에 몇 년 전의 결혼식장을 회상한다. 가는 그날이 다시 올 수 없음을 애석하게 여기며 스스로 늙었다고 자탄한다 그리고 누가 우리를 늙게 하였는지를 따진다. 가 와 나는 그것이 시간 문명 골프 버스 바둑 신문 술 라디오 담배 텔레비전 당구 선풍기 등산 냉장고 낚시 백화점 스포츠 히스테리 노이로제 여자 남자라고 규정짓는다. 그리고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나운서의 코멘트가 나온다. 지독한 스모그 현상으로 눈병 호흡기병이 겹쳐 세계인의 생명에 위독 소음으로 인한 청력상실 감정 장애 수면 장애성 개방에 따른 도덕의 타락 어른의 권위 상실 가정 파괴 지구온도 대기오염이 큰 원인 근대의 마법인 과학은 인류의 통일과 진보와 조화에 모든 것을 제공. 세계는 군사 분쟁 기아전쟁의 되풀이 장송곡 아기 울음 불경 찬송가가 효과음으로 들려온다. 다음엔 청년 을 통하여 권위의식만 내 새우는 고집쟁이 독선주의의 노인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영아원 고아원 양로원을 물론이고 길 잃은 어린 양을 구원해야 할 것을 덧붙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버림받은 노인 공원 벤치에서 사망한다. 경관이 시체를 들어낸다. 가 는 한 사람의 노인의 죽음으로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고 한다 나 는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성스런 슬픔이라고 한다. 다 라 마 바 는 슬픔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슬퍼하자 세계는 슬픔으로 덮여야한다 열심히 슬퍼해야 신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떠들어댄다. 그리고는 그들은 죽음의 경쟁을 시작한다. 죽음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죽음의 목표를 향해 출발하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오랏줄을 향해서 그들은 어느 누구도 진정한 죽음 오랏줄에 이르지 못한다.

 

위와 같이 몇 개의 주제어를 연결시키며 현대인들의 고달픈 세상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세속적인 모든 것을 신문으로 상징하면서 주인공 가 가 세상사에 집착하는 그래서 구겨진 신문지처럼 파편화된 비정상적 의식세계를 단층촬영을 하듯 구성해놓은 부조리형식의 작품이다.

 

 

작가 전진호

서울 출생으로 65년 서라벌 예대 졸업. 희곡 ‘들개’가 6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으며 같은 해 ‘밤과 같이 높은 벽’이 국립극장 장막극 모집에 뽑혔다. 75년 미국에 왔으며 83년 LA 민족학교를 함께 세우기도 했다. 조국에 돌아가 창작활동에 전념하려 했으나 93년 불치의 병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사인은 췌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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