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범신 '겨울 강 하늬 바람'

clint 2017. 12. 6. 14:29

 

 

한내리는 오랫동안 문명의 바람에 오염당하지 않은 한 지사적인 인물(윤초시)에 의하여 지배받아온 씨족부락이다. 이곳에 어느날, 서리깊은 한을 가지고 마을을 떠났던 한 남자(임준일)가 홀연히 돌아오면서부터 극은 시작된다. 때마침 마을 뒷산이 신발공장 부지로 결정되는데 남자는 바로 이점을 이용, 우매한 대중인 마을사람들을 조작원 윤초시와 마을사람 전체를 파열로 끌고 간다. 그러나 공장부지에선 대대적인 고분군이 발굴되고 마을은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며 임준일과 윤초시의 숙명적인 대결은 그 긴장을 더하게 된다.

 

 

 

 

 

때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근대기, 마을은 윤초시을 주축으로 한 윤가네 사람들과 소수의 다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마을이다. 윤초시의 주도아래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던 마을에 겨울 바람(북풍, 하늬바람)을 타고 어느날, 준일이 약 20년 만에 마을로 돌아온다. 고향에 공장을 지어 마을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겉으로의 이유였으나 사실 준일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윤초시에 대한 복수를 위해 돌아온 것이다. 윤초시 이를 알고 준일을 제재하려 하지만 물질과 쾌락을 제공하며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산 준일은 점차 윤초시을 옥죄어올 뿐이다. 이대로 공장이 건립되고 새 지도자 준일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을 사람들이 직접 윤초시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끝이 나기면 하면 되려던 찰나 외의의 사건이 발행한다. 바로 마을 뒷산에서 백제시대 무덤이 발견 되어 이것이 유적지로서의 가치가 있냐 없냐를 두고 공장건립이 미루어지고 만 것. 평소 유물에 애착을 갖고 있던 윤초시는 교수인 아들을 앞세워 발굴에 앞장서게 되고 준일과 윤초시의 욕망충돌은 극에 달한다. 악(惡)한 어린이, 존경받는 모습뒤로 자신의 가문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노인 등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 - 지혜로운 노인, 순수한 어린이, 연약한 여성이 형용사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드러내기는 쉽지 않은(특히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정해져 있어 정형화 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욕망이 그의 작품에는 흔하게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사람들도 특별해진다. 독자는 겉으로는 평범한 인물들이 드러내는 솔직함에 매력을 느끼고 이들이 이끄는 이야기에 점차 빠져든다.

 

 

박범신

소설가. 충남 논산 출생.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작품 활동을 재개한 후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작가의 글 - 박범신

희곡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처음에 나는 주저하였다. 내가 기왕에 써온 소설과는 장르가 달라 자신도 없었거니와, 특히 원작소설을 기법이 판이한 희곡으로 각색할 경우, 결국은 내가 쓴 원작을 내 스스로 파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예감은 철저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소설을 쓸 때의 의도와 무대공연이라는 양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한동안 전전긍긍하였다. 연극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나와는 개인적인 교분도 있는 연출가 방태수 선생이 아니었으면 아마 포기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방 선생이 희곡에 입문을 시켜준 셈이다. 나는 가급적 이 작업에서 하나의 명제, 인간 본질의 악마성이라는 점을 조명하려고 애썼다. 성선설(性善說)에 나는 굴복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눈에 뵈지 않으나 때로 포악스럽게 우리를 지배하는 마성(魔性)이라고 밖에 달리 부를 수 없는 미친 바람 같은 그 무엇인가가 인간 내면에 본질적으로 잠재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바로 그 악마의 정체를 추적하면 우리 시대의 어둠이 어디에서부터 연유하든지 그 핵심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원작에서는 이 문제 이외에도 몇 개의 부주제(副主題)가 있었다. 희곡에서 그린 것을 일일이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자연히 원작의 본래 의도는 물론이고 사건도 대부분 파손되었다. 나로선 스스로 내 손가락을 잘라내는 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봄이라고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나는 겨울이 그립다. 어서 겨울이 다시 오고 칼날같은 미친 바람이 불어왔음 좋겠다. 내 고향의 암회색 강변으로 달려가 쓰러진 갈대, 무분별한 바람, 폐기된 등대 안의 그 찰복한 어둠을 맨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게 진실로 나는 악마가 되고 싶다. 극단 에저또에 내 미진한 희곡이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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