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사용은 1900년 경기도 용인 태생이다. 호는 노작. 9세 때 백부 숭유의 양자가 되었고, 13세에 연상인 원효순과 결혼했다. 이어 상경, 휘문의숙을 졸업하고(16∼19) 3· 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피체(19)되어 옥고를 겪고 같은 해 6월 고향에 내려가 학우 정백과 은신하며 수필 〈청산백운〉올 썼으며 시 〈푸른 언덕가으로〉를 발표했다. 박종화, 정백과 문예지 〈문우〉 창간에, 이어 문예동인지 〈백조〉를 창간하였다. 이 잡지에 시와 소설을 계속 발표했다. 한편 1921년에는 연극운동에도 참가, 이기세, 김영보와 함께 「예술협회」를 창단 습작희곡을 쓰기 시작, 토월회, 산유화회 조직에도 가담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로 활동하다 1947년 사망했다. 그의 주요희곡엔 〈향토심) (할미꽃) <흰젖) <벙어리굿) <김옥균전〉 등이 있다. 노작은 일생 동안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1944년 이화전문학원으로부터 출강을 의뢰 받고 학교에 나가긴 했으나 학생들에게 인사만 받고 나서는 다시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랑하길 좋아했으며 방랑 도중 잠시, 강경과 전주 등지서 교편을 잡았으며 합천 해인사에 머무르며 팔만대장경을 연구하기도 했다. 해방 후 구국청년단에 가담했으나 폐가 나빠져 활동을 접고 문예지 「백조」를 발간하는 한편으로 신극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노작의 희곡 활동은 1923년 ‘토월회’에 참가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일제 강점기 속 한민족의 모습과 한국인의 주체적인 삶을 연극으로 형상화시켜서 적극적으로 표출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대의 희곡들이 다소 관념적이고 남녀 간의 애정사나 가정 내부의 문제 등을 주로 다루었던 데에 비해서 노작은 시대적 현실을 돌아보는데 주력했다. 나아가 종교극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한국 근대희곡 사에 결정적인 족적을 남겼다.
〈출가〉는 1928년 4월, 당시 불교전문지인 〈불교〉사 주최로 공연된 작품으로 싯달타 태자가 왕성을 떠나 구도하기까지의 과정을 극화한 성극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초연 후에 1938년 조선일보사가 간행한 〈현대조선 문학전집〉 희곡 면에 게재했다.

이 작품은 전2막으로 되어 있는데 서막에서는 사문유관을 통해 생로병사의 인간실존문제에 부딪혀 갈등하다 출가할 것을 결심한다. 제1막에서는 부자간 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을 통해 극의 재미를 북돋아 주고, 제2막에서는 출가직전의 상황이 재현된다. 부부사이의 갈등이 1막에 이어 계속되면서 싯달타의 성격이 고조된다. 희곡 ‘출가’는 노작의 두 번째 장막극이다. 싯달타 태자가 출가에 이르게 된 동기와 출가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자신 혹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스스로 과감히 버리는 것이 불교사상에 드는 첫 관문이며 불교의 空 사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 졌다. 이 작품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노작에게 1938년 부처님오신 날을 경축하는 공연물을 의뢰하면서 구상됐다. 우아한 문체와 잘 짜여진 극적구성이 불타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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