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볼프강 바우어 '찬란한 오후'

clint 2016. 11. 7. 10:27

 

 

 

 

 

 

 

본 작품에는 특별한 줄거리도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햇빛 가득한 여름날 오후, 평범한 사회의 흐름에 지겨워하고 지루해하는 도시의 젊은이들이 방안에서 벌인 일상의 모습일 뿐이다. 머리모양에 신경 쓰고, 담배를 피우고, 팝 음악에 심취하고, 술을 마시고, 섹스하고, 무의미한 잡담으로 일관하고, 운 좋게 얻어온 대마초를 피우고, 그러다가 싸우고,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살인이 일어난 어느 여름날 오후, 두 시간의 일상, 그것 일 뿐이다.
 이들은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이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지도 못하며 자신이 지루해하는 세상에 형이상학적인 절망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진지하지도 않다. 이들은 자기방식으로 편안하고 행복하다. 이들의 의사소통은 철저하게 최소한의 언어로 축소되어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 완벽하게 무의미하다. 이들에게 진지함, 진정한 마음의 표현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본주의의 문화산업이 감각적으로 제공하는 팝음악, 공포영화, 포르노 영화, 대마초 그리고 섹스 등 현재의 세상에 따라 사는 일 뿐이다.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이고 진부한 것이다. 사회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생산적인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하며 이들이 추구하는 자극을 이용해 이들을 미성숙한 소비자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1941년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Graz에서 태어난 볼프강 바우어는 교육자 집안의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볼프강 바우어의 할아버지는 고교 교장을 지냈고, 그의 아버지 롤프 바우어 Rolf Bauer는 철저한 보수적 성격을 지닌, 그라츠의 한 김나지움 교사이면서 역사가였으며 어머니 에디트 바우어 Edith Bauer 또한 김나지움에서 지리와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을 권위적으로 교육시키지 않았다. 당시 보수적인 시민 가정 출신의 세대가 대부분 과도한 권위적 교육원칙에 시달렸으나 볼프강 바우어는 학업과 미래에 대한 자신의 결정에 아버지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볼프강 바우어의 부모는 부자는 아니었으나 아들을 여러 곳에 여행시킬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또한 바우어는 부모와 함께 정기적으로 연극을 관람하면서 자유로운 소년기를 보냈고 아버지는 바우어에게 예술분야의 대화 상대자가 되어 주었다. 당시 50년대의 상황에서 볼프강 바우어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동년배와 달리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황경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 지리학, 로만어문학, 그리고 연극학을 공부했고, 결국 예술가가 되었으며 자유롭게 문학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볼프강 바우어는 그라츠의 문학 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라츠의 예술가 그룹인<시립공원 포럼 Forum Stadtpark>과 이들이 간행하는 잡지<원고 manuskripte>는 1960년 이후 고향문학과 감상적인 키치로 이루어지는 미학적 전통에 반기를 든다. 바우어는 처음부터 이 작업에 참여했으며, 특히 1962년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보인다. 1965년 12월, 바우어는 작가이자 사회학자이며 극이론가인 군터 팔크 Gunter Falk와 공동으로 “행복한 예술과 태도에 관한 선언 das Manifest der HAPPY ART&ATTITUDE”을 발표한다. 이는 현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진지하지 않은’ 프로그램이며 쾌락원칙을 억압하는 극장을 반대하고 지배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한 극장, 세상을 낭만적인 시(詩)로 만들기 위한 극장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우어가 말하고 있는 “행복한 예술과 태도”는 놀이와 삶의 기쁨, 사랑, 감각적 욕구 등에 기초를 둔 예술과 태도이고,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운동의 방향은 부드럽게 세상을 개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이 선언문의 몇 가지 중요한 항목을 보자

 

 

 

“「행복한 예술과 태도」는 이 세상을(세계관과 세상에 대한 자세를) 변혁하고자 하며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에 의해 얻어진 혁명과 변화는, 인류사에 있어서 최초로, 철저하게 부드러운 혁명과 변화가 될 것이다.”
“「행복한 예술과 태도」는 삶의 기쁨, 삶에 대한 기쁨, 그 기쁨을 일깨우고 추구하며 증가시키고자 한다.”
“「행복한 예술과 태도」는 [...] 쾌락원칙의 억압을 제거하고자 한다.”
“「행복한 예술과 태도」은 물론 문화를 바꿀 것이다. 이 운동은 지배관계와 업적주의를 통한 사회적 억압의 토대와 같은 것들, “충동원칙”의 억압, 쾌락 원칙의 억압 토대들을 문화로부터 떼어 놓을 것이다.”
이 같은 미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그의 희곡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통속성, 재즈, 록 음악,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익숙한 연극 형식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그의 극작품의 배경은 현재이며 그라츠 또는 비인이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들은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작가 자신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나이와 생활양식의 유사성, 그리고 작가가 구상하는 문학적 개념과 성찰이 그 인물들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됨으로써 작가와 작품 속의 인물은 유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볼프강 바우어에게 있어서 확정된 연극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작품의 공연 가능성은 문제되지 않는다. 관객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이해를 구하는 연극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그는 동시대의 삶에 존재하는 것들, 특히 우리가 선입관을 가지고 비정상적이라 여기는 인간의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일반적인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생각들, 예를 들면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은 파멸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마약과 섹스에 도취되어 있다는 생각을 그의 무대에서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관객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비사회적인 충동을 일깨우고 내적 만족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바우어가 보여주는 것은 관객의 위에 서서 소시민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가면을 벗겨낸다는 계몽자적 태도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분명 부조리극, 팝아트 Popart, 아방가르드 Avantgarde의 성향이 이입되어 있다. 바우어의 인물들은 사회의 아웃사이더이거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예술가들이다. 바우어에게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사회에 아웃사이더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사회는 정체되어 있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무의미성, 그리고 역사인식의 부재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기형화된 현상을 세밀하게 반영하고 있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회가 우리 사회 자체를 스스로 무력하게 만들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음모에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사회비판적 신 리얼리즘 Gesellschaftskritischer Neorealismus”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Wolfgang b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