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경자는 평생 바다를 물질하면서 살아온 해녀다. 그녀는 혼탁스러운 현대사의 와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순탁과 결혼하게 되나 남편 순탁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모국 방문단의 일원으로 고향을 찾게 된 옛 애인의 등장으로 순탁의 추악한 과거가 밝혀지고 자식들과의 애증의 관계가 얽히면서 경자는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참다운 인간적 삶을 찾아 나선다.
모든 희곡 작품이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아니다. 예를 들면 와일더의 [우리 마을]은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희곡 작품은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또한 예를 들면 [햄릿]은 주동인물 햄릿과 반동인물인 그의 숙부 사이의 갈등을, [로미오와 줄리엣]은 주동인물 로미오·줄리엣과 반동인물인 그들 부모 사이의 갈등을 각각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희곡 작품 속의 갈등이 반드시 인물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동인물과 운명 사이에서도, 주동인물과 그가 추구하는 목표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사이에서도, 인물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서로 대립되는 욕망이나 가치들 사이에서도 각각 나타난다. 그러나 대부분 희곡 작품 속의 갈등은 인물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갈등은 희곡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데에 작용하는 내재적 원리이다. 강용준의 [폭풍의 바다]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이 작품의 내재적 원리로 작용하면서 다른 요소들보다 훨씬 우세한 모습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따라서 그것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일은 [폭풍의 바다]의 주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작업이다. 이 글의 의도는 [폭풍에 바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갈등 장면들과 해소 장면들을 분석하는 데에 있다.
Ⅱ. 인물들의 갈등
인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단일한 갈등인 경우보다 그 단일한 갈등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복합적 갈등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폭풍에 바다]에서는 단일한 갈등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복합적 갈등을 통해 주제가 구현되고 있다. [폭풍에 바다]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복합적 갈등은 최순탁과 김경자 사이의 갈등,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의 갈등, 최순탁과 최윤정 사이의 갈등, 최윤정과 최윤수 사이의 갈등, 김경자와 손성민 사이의 갈등 등이다.
1. 최순탁과 김경자 사이의 갈등
최순탁과 김경자 사이의 갈등은 이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현재와 과거의 삶의 방식에 대한 비분리적·분리적 사고 또는 이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 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점들을 낱낱이 밝히는 데에는 각각의 경우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분석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다.
[폭풍에 바다]에서 최순탁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현실 속의 평범한 인물과는 다르다. 그는 김경자와 이혼했으면서도 그녀의 집에 찾아와 무엇을 부탁하기도 하고, 딸 최윤정(최윤정의 생부는 손성민이다.)이 남편과 헤어져 집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김경자에게 '에미'로서의 도리를 다하라로 충고하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이혼하기 이전의 행동과 다름없는 행동을 취한다. 이것은 그가 과거의 삶의 방식을 현재의 삶에 적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는 독자에게 사려분별이 없는 인물로 비쳐진다.
위의 두 장면만 놓고 볼 때, [폭풍에 바다]에서 또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하나의 인물인 김경자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녀는 최순탁과 이혼하기 이전의 태도와는 분명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여자들이 보통 그러하듯, 최순탁의 부탁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가 최순탁과는 달리 과거의 삶의 방식을 현재의 삶의 방식에 적용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장면·1>에서 최순탁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앞으로 출입을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과,<장면·2>에서 최순탁의 충고에 대응하여 최윤정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하면서 소금을 찾는 것은 모두 그러한 점들과 크게 관련이 있다. 김경자는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것은 그녀가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혼한 전 부인을 찾아와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최순탁도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는 김경자와 동일하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김경자가 지니고 있는 이중성이 최순탁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강하다. 작가는 그녀의 이중성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갈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김경자의 이중성은, 마음 속으로는 최순탁을 증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알고 보면 그 사람도 가련한 인생이지.'라고 말하거나, '하지만 어쩌냐? 출세를 하겠다는데 도와 드려야지'라고 말하는 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그러한 이중성만으로 최순탁에 대한 김경자의 감정이 부드러워졌다고 할 수는 없다. 잘 따져 보면 그녀는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하지만 어쩌냐?'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체념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이중성과 그녀의 이중성이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순탁이, 일본에서 살다가 조총련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참가함으로써 30년만에 이루어진 손성민의 귀향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그 인식은 순전히 최순탁 자신의 추측에 근거를 둔 것인데도 불구하고 최순탁과 김경자 사이의 또 다른 갈등을 설명하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편 김경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최순탁이 부리고 있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공격이 억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공격에 대해 '애들이 듣고 있어요.'라는 짤막한 대꾸로 응수할 뿐이다. 그런데도 독자는 김경자가, 최순탁이 부리는 터무니없는 억지에 약간 동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것은 그녀가 그가 부리는 터무니없는 억지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 않는 데에서 기인한 결과이다. 최순탁과 김경자 사이의 갈등도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삶의 방식에 대한 비분리적 또는 분리적 태도 때문에 나타나는 갈등이다. 그는 분명히 그녀와 이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혼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을 들추어내고, 그녀는 '우린 남남'임을 강조하면서 '더 이상 내 일에 참견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폭풍의 바다]에서 그가 보여 주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집착의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폭풍의 바다]의 주제를 구현하는 데에 나름대로의 기능을 발휘한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이제 두 인물 사이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자식의 결혼 문제까지를 야기시킨다.
위 장면에서도 최순탁의 억지는 계속된다. 이전에 비해 그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최경자를 공격하고, 김경자는 그의 공격을 끈질기게 방어한다. 그의 공격에는 그녀가 손성민을 끌어들인 것이라는 확신이, 그녀의 방어에는 자신이 결코 손성민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각각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2.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의 갈등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의 갈등은 이념으로 인한 갈등이다. 그 속에는 손성민이 보여 주는 아픈 역사에 대한 참회도 있지만, 최순탁이 보여 주는 아픈 역사에 대한 정당화도 있다. 또한 거기에는 옛사랑을 회복하려는 손성민의 노력과, 김경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최순탁의 몸부림도 함께 들어 있다.
서청이었던 최순탁은 일본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손성민이 갑자기 나타나 가정을 망치려 든다고 언성을 높이고, 이에 맞서 손성민은 무수한 젊은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한 최순탁이 어떻게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느냐고 몰아세운다. 4·3으로 인한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 장면에서 작가는 손성민의 입을 빌려 최순탁이 저지른 과거의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에 맨먼저 드러난 것은 김경자의 오빠이며 손성민의 친구인 김경서가 죽게 된 것이 최순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은 이념이다.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며, 따라서 그들의 마음 속에는 상대방을 관대하게 이해할 수 여지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독자는 이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이 전개되는 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는 두 인물 사이의 갈등에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독자가 두 인물의 갈등에 정의감을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별반 의미가 없어 보인다. 4·3 은 정의감과는 다른,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손성민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순탁은 손성민과는 정반대이다. 최순탁은 스스로를 변명하는 데에 급급하고, 손성민과 김경자의 관계를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최순탁이 그의 전 부인인 김경자를 타인으로 여겨버리면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순탁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경자를 붙잡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김경자는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의 갈등에 수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여기에서 '수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말은, 목적과 의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최순탁과 손성민이 접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 인물의 접근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위 장면에서 손성민이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그만큼 그가 더 인간적인 인물임을 말해준다.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이 이념뿐만 아니라 김경자의 심리적 태도에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녀의 '당신은 내게 아무런 권리가 없어요. 난 하루라도 인간들과 살고 싶단 말입니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녀가 최순탁 쪽이 아닌, 손성민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는 최순탁과 손성민의 싸움에서 최순탁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녀의 그러한 태도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은 손성민을 승리하게 한 요인이다. 손성민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것은 최경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가 최순탁을 향해 '당신은 내게 아무런 권리도 없어요. 난 하루라도 인간들과 살고 싶단 말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폭풍에 바다]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최순탁과 최윤정 사이의 갈등
김경자는 손성민의 아이를 임신한 후 최순탁과 결혼하게 된다. 최윤정은 최순탁과 결혼한 후에 태어난 딸이다. 최윤정이 어릴 때에 최순탁은 최윤정을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심하게 학대한 적이 있는데, 최윤정은 그것을 오랫동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최순탁과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 최순탁은 결코 인간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의 인간성은 난폭하며 특수하기까지 하다. 독자는 그와 같은 인물을 통해 현실의 어디인가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정적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그의 비정상적인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우리 삶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와도 다분히 관련이 있다. 최순탁을 향해 퍼붓는 최윤정의 말은 일종의 저주와 복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최윤정을 학대한 것에 대해 우연한 실수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최윤정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 학대이다. 그 점은 그가 할말이 없게 되자 최윤정을 향해 '닥쳐. 넌 애비를 어떻게 보고 그 따위 소리야?'라고 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4. 최윤정과 최윤수 사이의 갈등
최윤정과 최윤수는 아버지가 다르기는 하지만 오누이 사이이다. 정서방과 최윤정을 결혼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최순탁과 최윤수는 서로 공모하여 정서방으로 하여금 최윤정을 범하게 한다. 결국 최윤정은 정서방과 결혼하지만 나중에는 헤어지게 된다. 이것이 최윤정과 최윤수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배경이다.
최윤정은 최순탁과 최윤수가 공모하여 정서방과 결혼식을 올리게 않을 수 없게 한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고 있다. 정서방과 헤어진 최윤정으로서는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최윤정과 남동생 최윤수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그 갈등은 최윤정이 정서방과 헤어지게 됨으로써 생긴 갈등이며,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갈등이다. 그러나 최윤수의 생각은 최윤정의 생각과 다르다. 그는 '시집보내 줬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무슨 헛소리야?'에서 보듯이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윤정과 최윤수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은 최윤수의 불순한 의도가 그 원인이다. 그런데 이 갈등은 최윤정과 최순탁 사이의 갈등과도 관계가 있다. 최윤정과 정서방의 결혼은 최윤수와 최순탁의 공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자는 위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녀가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을 때 최윤수가 그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사실임을 의미한다.
5. 김경자와 손성민 사이의 갈등
김경자와 손성민의 갈등은 심각한 갈등이 아니라 아주 쉽게 해결될수 있는 갈등이다. 그것은 그녀의 '그래서 날 동정하십니까? 소박맞은 여편네라고 불쌍하게 보이세요? 세상을 오래 사셨으면 아실 만한 양반이 어찌 그런 말씀하십니까?'라는 말과, 손성민의 '난 그냥 떠나지 않겠소. 당신을 혼자 내버릴 수가 없단 말이오. 당신의 날 따르지 않겠다면 내가 당신 곁에서 살겠소'라는 말에서 확인된다. 그러므로 그녀와 손성민의 갈등은 [폭풍의 바다]에 나타난 인물들 사이의 갈등 중에서 가장 정도가 약한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폭풍에 바다]에서 김경자와 손성민 사이의 그 갈등은 작품의 주제를 구현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작가가 만일 이 두 인물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독자에게 최소한 부분적으로 밋밋한 모습을 보여 주었을 공산이 크다. 이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최경자가 손성민을 따라 일본으로 가게 되는 [폭풍의 바다]의 결말은 극적인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김경자에 대해 지니고 있는 손성민의 애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녀에 대해 지니고 있는 손성민의 애정은 헌신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순수하면서 또한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김경자는 자신에 대한 손성민의 애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김경자와 손성민 사이의 갈등은 애정확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Ⅲ. 갈등의 해소
원래 한국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바다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살어리 살어리랏다/바 래 살어리랏다"에서 보듯이 평화로운 삶의 터전으로서의 바다이다. 그런데 [폭풍에 바다]에 나타나는 바다는 삶의 절대적인 근원으로서의 바다이다. 또한 표피적으로 말할 때, 이 작품에 나타나는 바다는 등장인물인 김경자가 최순탁과의 사이에서, 그리고 손성민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과 관련되는 바다이기도 하다.
바닷속 동굴이 최윤선의 입을 통해 설명된다. 그러나 [폭풍에 바다]라는 작품 전체 속에서의 바닷속 동굴은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최윤선의 말에 의하면 바닷속 동굴의 바위문은 태풍이 불 경우에만 열릴 수 있을 터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경자는 최순탁과의 사이에서, 또는 손성민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항상 그곳에 가기를 열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자가 태풍이 부는 날에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그만큼 바다를 삶의 절대적인 근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바다는 그녀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모든 잠녀들이 가고 싶어했던 삶의 터전으로서의 바다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있어서 바다에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죽음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대체적으로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김경자의 열망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잠녀는 바다에서 죽어야 이어도에 간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그리고 '그러니 항상 당하게만 되는 거예요.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바라보세요. 왜 어머니가 아버질 빼앗겼어요?' 라는 최윤수의 말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김경자의 마음은 여전하다.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은 그녀의 삶의 방식과 관련된다. 그녀는 그 삶의 방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한다. 그것은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녀가 바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자식들이 바다를 버려도 자기는 바다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더욱더 그렇다. 위 장면들에서 결국 우리는 제주 잠녀들의 숙명적인 삶의 방식까지를 말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김경자에게 있어서 바다는 삶의 절대적인 근원이며 삶의 방식과 관련된다. 그런데 바다가 독자에게 그러한 의미로 전달되는 데에 기여한 것은 작가가 [폭풍의 바다]에 장치해 놓은 패턴(pattern) 이다. 이 작품에는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표명하는 부분이 다섯 번 반복되어 있다. 그것은 무심코 이루어진 반복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설정한 의미 있는 반복이다. 이 의미 있는 반복의 기법은 제주 근대사를 헤쳐온 제주 잠녀의 굴곡 많은 삶을 이야기하는 데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경자는 바다에 대한 변함 없는 집착을 보여 준다. 비록 손성민을 따라 일본에 간 후에도 바다가 생각나면 언제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김경자에게 있어서의 바다는 삶의 절대적인 근원이며 삶의 방식과 관련된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서의 바다는 당연히 그녀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과 관련되는 바다이기도 하다.
Ⅳ. 에필로그
지금까지 [폭풍의 바다]에 나타난 인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과 해소의 장면들을 분석해 보았다. 이제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순탁과 김경자 사이의 갈등은 이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현재와 과거의 삶의 방식에 대한 비분리적·분리적 사고 또는 이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 등에서 비롯된다. 최순탁은 이혼하기 이전과 다름없는 행동을 취한다. 그것은 그가 과거의 삶의 방식을 현재의 삶에 적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경자는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보통의 여자가 그러하듯 최순탁의 부탁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그녀가 최순탁과는 달리 과거의 삶의 방식을 현재의 삶의 방식에 적용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순탁과 김경자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데 김경자의 그것은 최순탁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강하다.
둘째, 최순탁과 손성민 사이의 갈등은 이념으로 인한 갈등이다.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며, 따라서 그들의 마음 속에는 상대방을 관대하게 이해할 수 여지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독자는 이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이 전개되는 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는 두 인물 사이의 갈등에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최순탁과는 달리 손성민은 과거의 일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손성민이 인간적인 인물임을 말해준다.
셋째, 김경자는 손성민의 아이를 임신한 후 최순탁과 결혼하게 된다. 최윤정은 최순탁과 결혼한 후에 태어난 딸이다. 최윤정이 어릴 때에 최순탁은 최윤정을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심하게 학대한 적이 있는데, 최윤정은 그것을 오랫동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최순탁과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 최순탁은 결코 인간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의 인간성은 난폭하며 특수하기까지 하다.
넷째, 최윤정과 최윤수는 아버지가 다르기는 하지만 오누이 사이이다. 정서방과 최윤정을 결혼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최순탁과 최윤수는 서로 공모하여 정서방으로 하여금 최윤정을 범하게 한다. 결국 최윤정은 정서방과 결혼하지만 나중에는 헤어지게 된다. 이것이 최윤정과 최윤수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배경이다. 최윤정과 최윤수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은 최윤수의 불순한 의도가 그 원인이다. 그런데 이 갈등은 최윤정과 최순탁 사이의 갈등과도 관계가 있다. 최윤정과 정서방의 결혼은 최윤수와 최순탁의 공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김경자와 손성민의 갈등은 심각한 갈등이 아니라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갈등이다. 그런데 그녀와 손성민의 갈등은 [폭풍의 바다]에 나타난 인물들 사이의 갈등 중에서 정도가 가장 약한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김경자에 대해 지니고 있는 손성민의 애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녀에 대해 지니고 있는 손성민의 애정은 헌신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순수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김경자는 자신에 대한 손성민의 애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김경자와 손성민 사이의 갈등은 애정확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김경자가 태풍이 부는 날에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그만큼 바다를 삶의 절대적인 근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바다는 그녀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모든 잠녀들이 가고 싶어했던 삶의 터전으로서의 바다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있어서 바다에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김경자의 바다에 대한 열망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바다는 삶의 절대적인 근원이며 삶의 방식과 관련된다. 그런데 바다가 독자에게 그러한 의미로 전달되는 데에 기여한 것은 작가가 [폭풍의 바다]에 장치해 놓은 패턴(pattern)이다. 이 작품에는 바다에 가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표명하는 부분이 다섯 번 반복되어 있다. 그것은 무심코 이루어진 반복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설정한 의미 있는 반복이다.
결론적으로 [폭풍의 바다]는 인물들의 갈등과 해소를 통해 제주의 근대사를 헤쳐온 제주 잠녀의 굴곡 많은 삶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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