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세 가보세]는 19세기 후반 봉건지배 질서의 급격한 동요와 외세의 침탈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외세를 물리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고자 민중이 스스로 일어난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이 공연되기 전인 1987년 가을,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운동권 전체가 선거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열되었고, 문화운동 역시 분열의 회오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속에서 한겨레 신문사의 요청에 의하여 5공화국의 언론통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한겨레 신문의 창간 축하를 내용으로 한 [붓풀이]로 제2회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이 작품은 한겨레 신문 창간식에서 공연을 한 뒤 인천과 광주에서 초청공연을 하기도 했다. <갑오세 가보세>는 극단 아리랑의 세 번째 작품으로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이 특정인물의 영웅적 무용담으로 흐르기 쉬운 것에 반해 이 작품은 먹쇠, 춘복, 판동 등 평범한 농민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전봉준 등 지도자들의 갈등, 조정의 무능함, 청국과 일본의 움직임을 배치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6명의 배우가 60여 명의 등장인물을 맡아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었으며, 장면에 따라 풍물, 민요, 꼭두각시놀이, 판소리 등 우리 고유의 연희양식과 18기, 가부키, 일본 검도 등을 활용하여 작품의 풍부함을 더했다. 이 작품은 1988년 제1회 민족극한마당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했다.
작가의 글
10년 전쯤에 초고를 써놓고 무모한 짓이 될 것만 같아 오랫동안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역사공부를 하면서, 또 광주시민항쟁과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 (……) 등 숨가쁜 현실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지내는 동안 언제나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1백 년 전에 온 나라를 불태우며 타올랐던, 갑오년 농민들의 피맺힌 함성이었다. (……) 그리하여 작년 10월쯤부터 참으로 지리하고도 고된 작업이 계속되었다. 초고가 나오기까지 극단의 단원들은 풍물과 민요와 탈춤과 연기 실습과 동학 관계 토론으로 쉴 틈이 없었고, 올 1월 말에 초고가 나와 연습에 들어간 2월부터도 끊임없이 토론을 벌여 대본이 수정되고, 새로 고쳐진 대본이 다시 걸레쪽이 되는 힘겨운 작업과 동학혁명 유적지 탐사와 전라도 현지 답사 등을 통해 동학농민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작품에 아로새기는 노력을 했다. (……) 또 연출 양식에 있어서도 마당극의 ‘열린 양식’과 무대극의 ‘닫힌 양식’을 복합적으로 수용해 보려 했다. 닫힌 양식이 장점으로 지니고 있는 사실성, 개별성, 이념성, 정확성과 열린 양식이 장점으로 지니고 있는 역사성, 전형성, 투쟁성, 선동성 등을 고루 살려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민중들의 장면은 될 수 있는 대로 열어놓고 지배층이나 외세의 장면은 될 수 있는 한 닫아놓는 배치를 해보았다. 열린 양식이 장점으로 지니고 있는 변화하는 세계관 속의 인물 묘사나 계급적 인물 파악이나 관객과의 현장적 교류와 함께 닫힌 양식이 장점으로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현실묘사나 내면의 심리 묘사와 사건 구성의 치밀함을 긍정적으로 상호 보완하기 위해 복합적 구성과 복합적 연출 양식을 시도해 본 것이다. (……)
[앞풀이] 광대가 나와 팔괘를 설명하고 징소리 울리면 배우들이 죽창과 깃발을 들고 검가를 부른다. [제1장] 광대가 왕실, 외세, 대신들의 수탈로 백성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설명한다. [제2장] 추수하는 농부들, 흉년과 세금으로 괴로운 신세. 조심스레 동학당의 소문을 전한다. [제3장] 전봉준과 마을사람들, 고부군수 조병갑을 찾아가 수세를 거둬달라고 하지만 옥에 갇힌다. [제4장] 일본인에게 고리채를 얻어 쓰고 겁탈당한 춘복아내. 동학군이 관아로 쳐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제5장] 조병갑이 왜나라 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는다. [제6장] 전봉준의 주도로 탐관오리를 물리친다. [제7장] 기생과 놀던 조병갑이 동학군에게 쫓겨 도망간다. [제8장] 마을사람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관군이 개입한다. [제9장] 전봉준, 손화중 등 동학지도자들이 관군과 싸우도록 독려한다. [제10장] 동학군 막사. 장령이 각지에서 모인 동학군들을 훈련시킨다. [제11장] 동학 지도자들이 모여 정읍으로 쳐들어가기로 한다. [제12장] 승전북춤. 보국안민, 광제창명 깃발이 나오고 무대를 돌며 북춤을 춘다. [제13장] 마을사람들,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후천개벽을 외치며 전주성으로 진격한다. [제14장] 관객들에게 “후천개벽”을 가르치고 칼을 들고 행진한다. [제15장] 전주성 정진사댁. 동학군이 들이닥쳐 고리대로 쌓은 재산을 빼앗고 노비문서를 태운다. [제16장] 고종과 민비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군을 진압하기로 한다. [제17장] 친청대신이 청나라군을 끌어들인다. [제18장] 친일대신이 일본군을 끌어들인다. [제19장] 고종과 민비가 청군과 일군의 개입을 빌미로 동학군의 해산을 종용한다. [제20장] 동학 지도자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산할 것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제21장] 동학군은 일단 해산하고 먹쇠가 집으로 돌아온다. [제22장] 동학군들이 집강소에서 나랏일을 보며 <갑오세>를 부른다. 홍동지가 동학농민이 되어 대원군과 민비를 놀리고 영노가 왜놈이 되어 등장한다. 모두 한바탕 논다. [제23장] 일본군과 청국군이 조선에 선전포고를 한다. [제24장] 광대가 외세의 침입에 대해 설명한다. [제25장] 일본공사관에서 사무라이, 일본상인, 기생이 가부키를 추며 만세를 부른다. [제26장] 먹쇠가 다시 동학군에 합류하려 하고 어머니와 아내는 이를 말린다. [제27장] 전봉준과 손병희가 의견대립을 보이자 동학군들이 이들을 설득시킨다. <갑오세>를 부르며 외세와 싸우지만 패배하고 만다. [뒤풀이] 광대가 노래를 부른다. 먹쇠 어멈이 갓난아기를 안고 일어서면 모두 따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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