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형재 ''성냥 팔던 소녀'에 대한 보고서'

clint 2026. 5. 8. 18:41

 

 

주인공 덕순은 30대 중반의 희곡을 쓰는 작가이다.
10년 전, 자기의 글쓰기를 지지해 주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80이 넘어 귀까지 어두운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덕순의 글쓰기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덕순이가 쓴 희곡안의 인물들 뿐이다.
아버지가 가끔 용돈이나 반찬값을 쥐어주지만 딸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딸은 희곡 집필을 십여 년간 계속하고 있지만 극단이나 연출 그리고 배우들도 선뜻 
공연할 생각을 않는다. 어머니는 잠깐 등장하나, 그냥 덕순과의 대화뿐이다. 
여주인공의 희곡을 팔아보려는 마음이 길거리에서 성냥 파는 소녀처럼 보이고, 
그것이 영상으로 연출된다. 딸과 아버지의 소통불통에서의 갈등이 소개가 되고, 
무능한 아버지를 원망도 해 보지만,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는 못한다. 
배우들이 주인공이 자리를 비우면 컴퓨터 노트북의 희곡을 읽어보고 공연 흉내를 
내기도 하지만 실제로 공연을 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파출부 격인 비슷한 연배의 여인이 등장하여, 아버지와 딸의 희곡을 

가지고 연습하는 장면이 펼쳐지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문학서적 출판과 관계있는 여성도 등장을 하지만, 자신과 연관된 지식만 

늘어놓을 뿐 희곡출판과는 거리를 둔다. 결국 성냥 파는 소녀처럼 성냥 대신 

“희곡을 사세요.”라는 외침과 반복되면서 바람에 묻힌다.
한동안 안 보이자 행인들이 덕순의 집에 찾아온다.
집에서 덕순이를 찾는데... 냉장고안에서 평화롭게 잠든 덕순.

 



2019년 3월 제4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에 극단 노을이 공연한 작품이다.
작가 전형재, 연출 송미숙. 
극은 덕순과 아버지 두 사람과, 나중에 나오는 파출부가 실재 인물이고
어머니는 덕순의 상상속에서, 그리고 배우들은 작품을 쓰는 덕순의 희곡을
읽고 연기하는 극중극의 인물들이다.
한때 유학갈 기회가 있었지만 홀로된 아버지 때문에 다 취소하고 
이젠 늙은 아버지를 위해 결혼도 뒷전에 밀리고 모시고 산다.
그리고 틈틈히 희곡을 쓰며 자신의 새로운 꿈을 그리는 것이다.
연극은 계속 아파트의 거실과 희곡 작품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진행된다.
그러면서 연극 한편 올리기 어려운 연극판의 현실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희곡을 파는 덕순을 보면 현실과 상상 속 어디에도
덕순이 현실이 녹녹치 않음을 보여준다.




전형재 작가의 글
성냥 파는 소녀는 오늘도 성냥을 판다.
나에게는 시골이 있었다. 할머니 집이다. 할머니 집은 나에게 TV문학관에나 나올 법한 유년의 기억 한쪽을 소중한 자산으로 남겨주었다. 나의 아버지가 10살쯤, 그러니까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지었다는 시골집은 벽지를 만지면 흙이 굴러 떨어지는 흙벽돌, 그리고 아궁이에 군을 때는 구들장과 커다란 가마솥을 2개나얹은 여염의 시골집이었다. 
시골집은 독특한 구조였다. 커다란 안방과 마루를 건너 건넌방이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랑방이 있는 것은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었지만, 커다란 안방의 윗목 1/5쯤에 벽을 치고 작은 방 하나가 더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 방을 웃방이라고 불렀다. 웃방에는 할머니의 오래된 싱거 미싱이 있었고 낡은 반닫이가 있었다. 그러나 웃방의 진짜 주인은 언제나 할머니의 콩나물 시루였다. 이른 새벽, 새벽잠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웃방으로 올라가 붉은 알전구 밑에서 시루에 물을 주었다. 나는 시루에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조용히 웃방으로 올라가 할머니가 시루에 물을 주는 광경을 졸린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할머니 밑으로 물이 다 새."  
"그러니까 봄나물이 자라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비과학적인 대답이었지만 난 할머니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콩나물시루에 대한 기억은 내가 세상의 질서와 기준을 알아가는 사이, 나의 기억 속 수장고안에서 잠들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어느 여름방학,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고추밭에서 함께 고추를 땄다. 나와 아버지는 으레 그렇고 그런 데면데면한 부자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심심하고 무료할 때쯤 아버지의 객쩍은 농담이 날아온다. "힘드냐? 세상에는 밑져도 해야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뭔지 아냐?” ... "하나는 전쟁이고 하나는 농사다 밑진다고 전쟁 안할 수도 없고, 농사도 매한가지다." 그러면 옆에서 어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자식 농사도 농사지!" 
몇 년 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러니까 세속적인 평가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와 작가와 연극제작자가 우리 곁에서 떠나갔다. 말하기 좋아하는 세상은 좋은 소리든 나쁜 소리든 우리의 이야기를 자기들의 도마위에서 이러쿵저러쿵 회를 쳤다. 어떤 이는 그럴수록 더 당당하게 예술의 권리를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허울 좋은 예술가의 자존심에 다른 일은 안 하는 베짱이들이라고 수군댄다. 모 정치인은 예술에 대한 투자는 투자가 아니고 지원이다. 일을 투자하면 최소한 일이라도 나와야 본전치기라도 될 텐데 가성비가 제로다.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밑 빠진 독에서 콩나물이 자라고 있음을 빠져나가는 물이 아까워 물을 주지 않으면 콩나물은 맛볼 수 없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때를 빼고는 시루를 덮은 천을 열어보면 안 된다. 왜냐고? 콩나물대가리가 퍼레지고 찔겨져서 맛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 천을 열어야할지는 숙련된 감각만이 할 수 있다. 우리 할머니는 그걸 어떻게 아셨을까? 
무슨 팔자에 연극을 하게 됐는지 지마다의 사연 또한 제각각이겠지만 밑져도 해야하는 그 무엇이 '전쟁'과 '농사'라면 난 '연극'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연극도 농사짓듯 해야한다. 하지만 경제 논리로 따지자면 연극이나 농사나 가성비는 빵점이다. 왜 우리에게 연극이 있어야하는지 논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고 구차하다. 

 

 


이쯤되면 우리는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 함석헌 선생의 '나로부터의 혁명'이 생각난다. 함석헌은 사회혁명 이전에 자기혁명, 자기해방을 이야기했다. '참 나'를 발견하는 것,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희망하고 그것에 헌신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해야 한다. 함석헌은 자기 혁명 없는 사회적 실천, 실천 없는 자기 명상은 결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는 잘해왔는가. 그저 콩나물 시루에 누군가 물을 부어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오랜 세월 국민 세금으로부터 나온 지원금을 받아서 우리는 그에 어울리는 무엇을 해왔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외국사례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네들은 그네들의 사정대로 사는 거고 우리는 우리의 사정대로 임하면 된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의 연극 현실은 정치 현실보다 더 정치적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연극계에 발을 딛는 신출내기들은 연극보다 정치를 먼저 배워야한다. 그곳에서 그들이 해야할 일은 심장을 갑옷으로 감싸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아군으로 부터 자신의 뒤통수를 보호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연극은 자신의 꿈과 함께 습작에 머물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동료들이 쓸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맥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지 가슴 한쪽이 아리다. 나의 연극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그것으로 장사가 잘되고 그것으로 지원금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대학로 술집의 붉은 화장실 불빛 아래서 득의양양한 적은 없었는지. 네온사인만 출렁이는 그곳에서 난 오늘도 성냥을 판다. - 2018년 36의 여름날 씀.

 

전형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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