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토머스 데커 '구두장이의 축일'

clint 2026. 4. 7. 13:26

 

 

 '구두장이의 축일'은 크게 세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플롯은 구두장이 사이먼 에어가 도제 한스의 도움을 받아 벼락부자가 되고,

이 부(富)를 바탕으로 런던 시장까지 된다는 중산층의 성공신화이다.

이 플롯과 함께 진행되는 두 플롯은 런던의 상류층과 하류층에서 각각 벌어지는

남녀 간의 로맨스이다. 백작의 상속자 레이시와 런던 시장의 딸인 로즈의 로맨스가

돈(런던 시민)과 작위(귀족)의 결합이라는 당대의 계급 변동을 보여준다면,

도제 라프와 그 아내 제인의 로맨스는 런던 하층계급들의 고단한 현실을 반영한다.

이 세 플롯은 서로 연결되고 엮이면서 에어의 신분 상승과 두 커플의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을 만들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갈등이 풀리고 계층 간 화합도

이루어지면서 제목 그대로 축제로 마무리된다.

 

 

 

<구두장이의 축일>(The Shoemaker's Holiday)는 토머스 데커가 쓴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이다. 이 작품은 1599년 애드미럴스 맨 극단(Admiral's Men)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도시 희극 장르에 속한다. 
이 작품은 런던 길드 회원들의 삶을 묘사한 "시민극"으로, 데커 특유의 런던 일상생활 

묘사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극의 배경은 헨리 6세이지만, 헨리 5세의 재위 기간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헨리 5세는 1413년 26세의 나이로 사망한 아버지 헨리 4세의

뒤를 이어 영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왕위를 확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 1부, 2부>, <헨리 5세>에 묘사된 인물이다.

데커는 이 작품에서 이러한 연관성을 활용하여 영국 왕을 등장시키지만,

초판 인쇄본에서는 대사 서두에만 "왕"이라고 표기하였다.

 

 

 

도시희극이 런던을 다루는 태도를 찬양과 비판으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면, '구두장이의 축일'은 대표적인 런던 찬양 작품이다. 여기서 런던은 일개 도제의 신분이라도 부지런히 입만 하면 언젠가 런던 시장도 될 수 있는 곳이고, 도제와 주인, 귀족과 중산층 간의 계급 갈등은 결국 화해로 연 결되며, 사랑하는 남녀는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결혼으로 맺어지고. 왕실과 런던은 전통적인 갈등관계를 접고 각각 충성과 애민(愛民)으로 화합을 이루는 훈훈한 관계가 된다. 그러나 '구두장이의 축일'에는 축제적인 표면 밑에 당시 런던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현실이 그대로 들어 있다. 사이먼 에어의 벼락출세는 그의 근면 성실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귀족 자제인 레이시의 돈으로 수상쩍은 투기를 한 덕이고, 정작 그 돈은 레이시가 전쟁에 참가하는 대가로 받았으면서도 참전은 하지 않은 채 갖고 있던 돈이다. 또한 에어가 갑자기 시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장 후보인 다른 시의원들이 역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즉 사이먼 에어의 기적 같은 신분 상승은 중산층의 미덕 덕분만은 아니고, 따라서 다른 도제나 기능공들에게 따르라고 강조할 만큼 전형 적인 예도 아니다. 에어의 출세는 사실 예외적인 경우인데 오히려 전형성을 강조하며 따르라고 하는 것은 런던의 가장 하층계급이었던 도제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면서 현실에 순응하여 열심히 일하라는 노동윤리의 강요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이 극의 어두운 면은 계급 간의 갈등에서도 드러난다. 극 말미에 주인과 도제, 귀족과 런던 시민, 왕과 런던 간에 계급적 화합이 이루어지지만 이 화해가 극 중간에 언뜻언뜻 드러났던 계급 갈증의 면면들을 온전히 덮는 것은 아니다. 특히 런던의 불편한 현실은 기능공 라프의 플롯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나는데, 귀족이자 장교인 레이시가 전쟁터를 거부하고 연인 곁에 머무르며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 비해, 하층계급인 기능공 라프는 갓 결혼했음에도 징집을 피하지 못하고 참전해서 다리를 잃고 아내마저 잃는다. 물론 라프는 '양반의 기술'인 구두 제작기술을 가진 덕분에 원래의 일자리로 돌아가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아내도 되찾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도제나 기능공 계급의 빈곤과 고단한 현실, 전쟁의 참상, 계급 간의 갈등 등은 극 말미에서도 잔상이 되어 남아 있다. 왕과 런던 시 간의 화목한 관계 역시 환상이고 소망 충족적이다. 실존인물 에어는 헨리 6세 시대의 인물이지만 작품 속 왕은 헨리 5세에 더 가깝게 그려지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현실의 역사성을 지우고 축제적인 환상을 그리기 위해서 일 것으로 추측된다. 작품 속 왕은 구두장이들에게 특혜를 약속해줌으로써 구두장이 같은 런던 시민들의 이익을 우선하고, 작품 속 계급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자애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실제 왕실과 런던 시의 관계는 오랜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고, 이는 이 극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언급하는 왕의 대사로 끝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튜더 왕조 내내 전쟁은 런던 시민들에게 많은 비용과 희생을 가져온 것이었으니, 왕이 한편으로는 런던 시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희생을 가져올 전쟁을 언급하며 극이 끝나는 것은 '구두장이의 축일'의 축제적 결말 바깥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현실의 그림자를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어두운 면들이 극에서는 저변에 깔려 있거나 암시될 뿐이고. 극 전반은 축제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주인공 사이먼 에어의 긍정적 에너지와 활기 넘치는 언어에 기인하는데, 에어는 특유의 언어와 비유로 중산층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작품 전반에 불어넣는다. 에어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가 왕은 아니지만 왕처럼 태어났다.”는 대사가 그 예인데, 에어는 중산층 구두장이인 자신의 태생이 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다. 에어의 계급적 자부심은 언어뿐 아니라 그의 처신에서도 드러나서, 그는 상대방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심지어 왕 앞에서도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당당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계급 갈등과 하층계급의 고단한 처지, 전쟁 같은 당대의 어두운 현실들이 작품 속에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시희극 초기작인 '구두장이의 축일'에서는 런던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더 우세하다. 도시희극의 첫 흥 행작은 이처럼 런던에 대한 긍정적인 정의로 시작되었다.

 

 

 

 

토머스 데커 (Thomas Dekker, 1572?~1632)

토미스 데커는 런던 출신 작가로서 런던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썼고, 그중에서도 '구두장이의 축일'은 런던에 대한 데커의 애정과 자부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데커의 선배 극작가들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양 대학 출신으로 이루어졌던 '대학 재사들이었던 것에 비하여, 데커는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 전문 극작가로만 활동했던 첫 세대 작가이다. 데커는 평생 여러 장르의 수많은 문학작품을 단독, 혹은 공동으로 집필했지만 평생 가난에 서 벗어나지 못했고 7년간 채무자감옥에 수감되어 경력이 단절되기도 했다. 다작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 대다수가 출판되지 않은 채 멸실된 까닭에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대표작으로는 '구두장이 의 축일'외에 '정숙한 창녀' 1, 2부, 웹스터와 공동집필 한 '서쪽으로' 와 '북쪽으로' 미들턴과 공동집필 한 '왈패 아가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