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한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연극 평론가, 바르톨로메우스 박사 I, Ⅱ, Ⅲ가 차례로
이오네스코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연극에 대한 이오네스코의
관점과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시대’가 원하는 작가로 ‘재교육’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작가 재교육’의 과정에서, 3명의 비평가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사회적 이념괴
미적 관점에, 언어유희에 가까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면서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이로써 좌우익의 정치적 관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헤겔 등에 이르는 다양한 문학및
철학이론, 희랍비극작가,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아다모프, 브레히트 등의 연극,
계몽적 교훈주의와 미적 쾌락주의, 관극주의와 연극성의 문제 등 연극 및 연극비평주의와
관계된 기존의 이론 및 실천행위들이 뒤엉켜서 무대 위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학적이면서도 권위적인 평론가들의 언술과 태도에 압도되어,
이오네스코는 점차 자율적인 의지를 거세당한 채,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가지만,
청소부 마리가 등장하여, 모든 상황을 본래대로 바꾸어 놓는다.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이오네스코는 갑자기 관객들에게 연극이 끝났음을 알리고,
무대 위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과 관련하여 장광설에 가까운 ‘연설’을 하기 늘어놓는다.
이에 무대에 재등장한 비평가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이오네스코는 즉시 실수를 인정하며,
자신의 견해 의견 역시 ‘예외’일 뿐 ‘법칙’이 될 수는 없다고 덧붙이면서 막이 내린다.

<알마의 즉흥극>은 유진 이오네스코가 1956년에 발표한 풍자 희극으로서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다소 변별되는 주제와 극형식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적이다.
무엇보다 이 연극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오네스코’라는 극적 인물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연극이 실제
이오네스코의 내면세계, 창작태도, 연극적 지향성 등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이 연극은 이오네스코 자신의 연극적 관점을 직접적으로
표명하거나 혹은 그것을 연극 미학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대 극작가의 자유롭고도 자율적인 창작활동을 억압하거나 규율하는,
완고하리만큼 보수적인 연극이론 및 연극비평주의를 조롱하고 풍자하는데 주력한다.
이처럼 연극과 연극비평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연극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창조행위를 반성적,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일종의
‘메타연극’ 혹은 ‘메타비평연극’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이오네스코 작품과 유사하게 비논리적인 상황과 무의미한 언어로 채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또 다르게 연극과 연극비평주의에 대한 풍자가 메타연극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는 모호하며 난해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알마의 즉흥극>은 몰리에르의 고전희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여 희극성과 연극성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즉흥극을 방불케 할 만큼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장면 전개를 통해 유쾌하고도 살아있는 웃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연극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박사들의 논쟁 외에 이오네스코 역시 무언가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는 박사들의 논쟁에 휘말리게 되고, 자율적인 의지를 거세당하고 만다.
청소부 마리가 등장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자 그때서야 정신을 찾는다.
갑자기 이오네스코는 관객들을 향해 연극이 끝났음을 알리고, 무대 위에서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연설’을 아주 장황하게 풀어내는데,
비평가들의 말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즉, 비논리적인 것이다.
세 명의 연극 비평가들이 비난을 하자,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비평가들의 그러한 태도를 비판했던 이오네스코 자신 역시도 같은 태도를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견해 역시 옳은 것이 아니며, 또한 법칙이 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알마의 즉흥극]은 관객들에게 모호하고 난해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바로 ‘언어’가 지닌 횡포성이다.
현대 사회 역시 무수히 많은 말들이 여기저기 존재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절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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