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세라 룰 '죽은 남자의 휴대폰'

clint 2026. 3. 26. 12:31

 

 

카페에 앉아 감사 카드를 쓰고 있던 ‘진’은 옆자리에서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를 참다 못해 휴대폰 주인인 낯선 남자 ‘고든’에게 전화를 받으라 말을 건다. 
반응이 없자 직접 전화를 받아 메시지를 전해주려 하지만 이내 그가 죽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진’은 죽은 남자 ‘고든’에게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들을 
계속해서 받으며 ‘고든’의 주변 인물들을 만난다. 선의의 거짓말들을 꾸며내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던 진은 점점 그 관계 속에 빠져들어가며 예기치 못한 
사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진은 고든이 비밀 장기 매매자이며 불행한 

결혼생활과 오해로 가득한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 가까운 사람들과 전혀 소통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가능했던 가족과의 소통이 

핸드폰과 생전 만나지도 못한 '진'을 통해 사랑과 긍정의 에너지 속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진은 고든의 동생 드와잇과 사랑에 빠지는데...

 

 

 

세라 룰의 <죽은 남자의 휴대폰>은 기술정보 시대의 변화하는 사랑, 죽음, 기억의 의미를

블랙코미디와 시적 감수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여성적 미학으로 승화시킨 수작이다.

이 연극은 2008년 뉴욕에서 초연되었고 2009~201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예술성은 물론 대중성도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허공에 떠도는 
유령과 같은 관계 맺음이 아닌,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마주치며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었던 한 남자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그의 능동적인 대변인이 된 여자. 
죽은 남자조차 풀지 못했던 가족과의 오해를 진심과 배려로 풀어나가며 관계를 
회복시키는 그 과정에는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명확해지는 진정한 관계맺음이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만을 남기던 시대는 갔다. 이제 사람들은 죽으면서 거대한 비밀의 문, 휴대폰을 남긴다. 주소도 불분명한 익명의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죽은 남자의 휴대폰을 대신 받게 된 주인공 진은 마치 토끼 굴로 빨려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신비하고 부조리한 영적 여행을 시작한다. 죽은 남자 고든의 가족을 차례로 만나고, 그의 정부/동료를 만나고, 급기야 지옥까지 가서 고든의 실체와 대면한다. 단계마다 - 마치 시계 토끼처럼 -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은 남자의 휴대폰이다. 그러므로 이 극은 무엇보다 휴대폰에 관한 연극이다. 작가 세라 룰은 이 극을 통해 "신이 발명한 최신 커뮤니케이션 장비인 휴대폰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진은 말한다. “난 내 휴대폰을 가져 본적이 없어요. 늘 거기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휴대폰이 켜져 있으면 무조건 그곳에 있어야 하잖아요. 가끔은 그냥 사라지고 싶은데. 하지만 반대로 모든 사람이 다 휴대폰을 켜고 있으면, 그건 마치 거기엔 아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 자신은 사라지는 거죠.”

 

 

 

휴대폰이 우리 시대의 천사, 요정, 혹은 귀신이라면 이 영적 존재를 조종하는 신의 존재는 무엇인가? <죽은 남자의 휴대폰> 에서 신은 암시만 될 뿐 그 실체나 성격은 모호하다. 룰의 인물들이 사는 세상은 물질세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이 일종의 종교적 에너지로 작용하는 세상이며 일상적인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세상이다. 그렇게 소통과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휴대폰에 실려 카페에서 교회로, 카페로, 고트립 부인의 집으로, 드와이트가 일하는 상점으로, 다시 카페로 남아프리카 공항으로, 지옥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집으로' 돌고 돈다. 진은 마치 지구의 컨트롤 타워로부터 단절된 우주 비행사처럼 아무런 매뉴얼도 대책도 없이 달랑 휴대폰 하나에 의지해 아득하고 광활한 우주의 공간을 헤매고 다닌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기 위해서. 휴대폰에 대한 작가 룰의 입장은 양가적이고 복합적이다. 고든의 휴대폰은 과거는 물론 현재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는 여자 진을 새로운 모험과 관계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다른 시간, 다른 장소로 '도피'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번역자의 글 - 최성희

<죽은 남자의 휴대폰>은 보기에 따라 한없이 쉽게도, 매우 난해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 작품의 성격을 풀어낼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작가가 작품 서두에 제시하고 있는 세 개의 명구(epigraph)에 담겨 있다는 것이 역자의 생각이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서 따온 첫 명구는 인간존재의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 <죽은 남자의 휴대폰>은 인간이라는 비밀스러운 존재에 대한 디킨스의 경외와 경의뿐만 아니라 분명한 한계와 위기 속에

서도 인간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히는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둘째 명구는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시 <대담한 사랑(The Undertaking)> 에서 인용한 것이다. 일찍이 T. S. 엘리엇은 존 던의 시를 이렇게 평가했다"존 던의 시가 이토록 강력하게 현대인을 매혹하는 이유는 그가 어떤 정돈된 사상적 체계보다는 수수께끼같이 흥미로운 생각의 조각들을 배열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고체계의 '진살에는 별관심이 없다. 대신 생각 자체를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바라본다. 던의 시작(詩作)은 사고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포착한 뒤, 마치 고양이가 털실뭉치를 가지고 놀듯 그 안에 유예되어 있는 감정의 최소 단위들을 변증법적으로 풀어내는 과정과 같다.”

엘리엇의 말은 세라 룰의 극작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죽음, 영혼, 고독, 사랑 등 실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화두를 광범위하게 건드리고 있는 <죽은 남자의 휴대폰은 체계적인 사고를 제시하지도, 사상의 '진실'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술정보 시대의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기이하고 유머러스한 단상들을 무대 위에 배열할 뿐이다. 룰의 기상(奇想)이 지향하는 방향은 논리가 아니라 그 이미지 안에 "유예되어 있는 감정에 대한 정서적 환기 또는 정동적 효과다그런 의미에서 룰이 셋째 명구로 <호퍼(Hopper)>를 선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사실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그의 작품은 현대인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상실감과 고독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공간, 빛, 인물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은 현실과 일상이라는 표피에 가려진 인간의 내면을 응시한다. <죽은 남자의 휴대폰> 에는 두 번의 "에드워드 호퍼 순간이 명시되어 있지만, 호퍼의 그림을 특징짓는 상실, 고독, 단절의 정서는 이 작품 전체에 드리워진 '배경'이자 '기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명구인 존 던의 <대담한 사랑>은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와이트에 의해 또다시 언급된다. <플라토닉 러브> 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이 시는 존 던의 다른 애정 시들과 달리 정신적이고 영적인 사랑의 우월성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오비드적 전통과 페트라르카 전통을 동시에 수용한 던의 시가 성()스러움과 성()스러움을 연결하고 성과 속을 융합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 시가 보여주는 분명한 이상주의적 사랑이 던의 풍자적 전략인지 아니면 진심어린 제안인지가 불분명하고 이러한 양가성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 시를 인용하는 드와이트와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진에 대한 작가 룰의 시각에서도 발견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틀은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지는 메타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Sarah Ruhl)

 

1974년 일리노이 주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자 연극반 지도교사인 어머니와 장난감 회사 중역인 아버지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현재는 정신과 의사인 아시아계 미국인 남편, 그리고 세 명의 자녀와 함께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연출하는 연극 연습을 쫓아다닌 룰은 자연스럽게 극장이라는 마법의 장소와 배우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매료된다. 문학과 재즈에 심취했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언어와 음악에 대한 룰의 각별한 재능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는 룰이 브라운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룰의 거의 모든 작품이 죽음과 기억을 화두로 삼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세라 룰의 작품이 우리의 주목을 요하는 이유는 그녀의 연극이 세대별로 구분된 기존의 페미니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단절이 아닌 통합과 치유의 길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룰의 작품에는 언제나 세상의 중심에서 소외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녀의 소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도, 젠더를 직접적인 정치적 의제로 삼지도 않는다. 룰의 새로운 여성주의 연극은 이념적 연대보다는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공감에서 출발한다. 일상과 현실을 지배하는 중력과 이성의 법칙에서 살짝 비껴간 그녀의 무대는 관객에게 불가해함과 불확정성이 주는 자유와 위로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