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롤경관은 웃통을 벗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열심히 TV 축구경기를 보고 있다.
축구 경기장 관중이 함성을 지르자 그는 "저런 병신"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꼼짝 않고 화면을 응시한다. 관중이 다시 함성을 지르자 크롤경관은 또 다시
"저런 병신"하고 내뱉는다. 마리아가 경찰복 상의를 들고 부엌에서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춰 선다. 남편은 본 척도 안한다. 마라아는 남편 옆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기동경찰인 남편의 옷이 요즘 학생들 데모로 많이 찢어지고 엉망인 것을 데모 학생들에게
돌린다. 그놈들 모두 쏴죽여여한다고 계속 수다를 떤다. 간혹 축구중계를 보는 남편은
응원하는 팀이 지는지 함성이 나오면 또 다시 "저런 병신"하고 내뱉는다.
아내는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한다는 투덜거림에 나아가 히틀러 때가 좋았지,
어딜 경찰에 대들고 데모를 해? 모두 총에 맞아 죽었을 거야.... 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하아하나 벗으며 남편을 침실로 끌어들인다.
"사정없이 쏴갈겨요..."

단막극 <게임>은 작가가 불과 몇 시간만에 즉흥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등장인물은 유명한 연예인도 정치가도 아닌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역시 지극히 일상적인, 어느 집에서나 흔히 있을 법한 저녁 한 때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비친 일상은 마치 일간지의 신문만평에서처럼 삐딱하게 묘사된다.
인물들 역시 상당히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것은 영어로 붙인 원제 <MATCH>의 뜻만큼이나 다양하다.
<MATCH>는 보통 시합이나 경기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만, 짝짓기나 결혼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잘 어울리는 한쌍을 말할 때나 서로 만만치 않은 호적수를 가리킬
때도 이 단어를 쓴다. <MATCH>의 주인공은 어느 평범한 중년부부. 그리고 이야기의
소재는 이들의 단란한(?) 저녁한 때. 하지만 첫 대사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의사소통이
단절된 상태를 보여준다. 데모 진압하느라 밖에서 하루종일 시달렸던 경찰 크롤은
저녁 내내 TV 앞에 앉아 축구경기에만 빠져있다. 아내는 어떻게든 그런 남편의 관심을
자기에게 돌려보려고 갖은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둘의 대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합은 TV 속에서만 진행되는게 아니다. 겉돌기만 하는 둘 사이의 대화도
일종의 시합이다. 아내는 무관심한 남편의 골대에 수없이 공을 차 보낸다.
푸념의 단어들로 가득 채운 공을. 실망한 아내의 끝없는 푸념에서, 그리고 축구경기를
보며 내뱉는 남편의 욕설에서 일상에 비친 폭력성과 이기적이고 야비한 소시민
근성이 극명하게 폭로된다. 막이 내리기 전 아내의 끈질긴 노력은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는데, 베드신으로 진입하면서 아내가 부르짖는 다의적 구호 역시 다분히 폭력성을
띄고 있다. "사정없이 쏴갈겨 버리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짝짓기가 골인되는 것이다.

작가의 사회 인식과 부조리한 상황을 경찰 부인을 통해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20분이 채 안되는 단막극이지만 작가의 예리한 주제의식이 재미있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그의 특징인 블랙유머가 곳곳에 펼쳐지는 작품이다.
2000년 '해외명작단막선’이란 타이틀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조리계열의
작품들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처음 소개 공연할 때 강영걸의 연출로 공연되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Thomas Bernhard, 1931년 2월 9일 ~ 1989년 2월 12일)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희곡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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