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버나드 쇼 '사과 수레: 정치 대소동'

clint 2026. 3. 28. 07:51

 

 

영국 왕 마그누스는 어느 날 오전, 궁으로 찾아온 총리와 내각장관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왕에게 거부권을 사용하지 말고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지도 말라 요구한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각이 총사퇴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내민다. 
허수아비 왕노릇이 싫은 왕은 장관들과 설전 끝에 저녁까지 답하겠다고 말한다. 
오후에 왕은 정부 오린시아의 방을 찾는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왔다가 사랑싸움이 
심해지는 바람에 몸싸움까지 벌이다가 비서에게 들키고, 이래저래 심사가 헝클어진 
왕은 곧 내각에 뭐라고 답할까? 고민 중에 미국대사가 방문해 미국이 주도하는

영연방에 영국도 일원으로 참가하라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고... 
잠시 후 내각 회의가 열리자, 영국 왕 마그누스는 폭탄선언을 한다.
내각은 총사퇴하고, 왕위를 아들한테 물려주며, 자신은 민중 선거를 통해

하원의원이 되고 다수당이 되어 직접 총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상연되자 작가가 민주주의보다는 군주제를 옹호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작가는 오해를 바로잡고 자신의 정치관을 밝히기 위해 긴 서문을 써야 했다. 먼저 
세습군주가 선출된 총리보다 자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정치를 망치는 것은 
금권정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서 국민의 정부와 국민을 위한 정부는 가능하나, 
국민에 의한 정부는 성인에게 선거권을 쥐여 준다고 해서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친구 개티가 발명한 파손방지 기계가 ‘파손 주식회사’의 방해로 
사장되는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금권정치의 폐해를 고발한다.
결국 이 연극을 통해 작가는 좋은 정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 정치의 
모순을 폭로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민주주의와 통치의 민낯을 드러내는 버나드 쇼의 파격 정치풍자극이다.
국민에게 선거권을 쥐여 준다고 해서 대의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사과 수레: 정치 대소동>(The Apple Cart: A Political Extravaganza)은 버나드 쇼가 

1928년에 쓴 희곡이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종종 긴 독백을 통해 여러 정치 철학을 

설명하는 풍자 희극이다. 가상의 영국 왕 마그누스가 왕권의 남은 정치적 영향력을 
박탈하려는 총리와 그의 내각과 대립하고, 결국 그들을 압도하는 과정을 그린다.

왕이 정치인들을 조종하고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기업에 반대한다. 
쇼는 서문에서 이 희곡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민의 지지로 선출된 총리가 언론과 연설을 통해 여론에 영향을 미칠 권리를 
박탈하려는, 즉 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왕이 물리치는 희극입니다. 왕은 무력한 

존재로 남느니 차라리 왕위를 버리고 국민의 지지로 선출되는, 매우 유망해 보이는 
총리가 되겠다고 응수합니다."
이 희곡은 1928년 12월에 완성되었고, 영국 초연은 1929년 8월 제1회 맬번 

드라마 페스티벌에서 이루어졌다.

 



버나드 쇼의 <사과수레>는 민주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풍자희곡이다. 국왕과 내각의 갈등이라는 설정을 통해 ‘국민에 의한 정부’ 라는 이상이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쇼는 군주제를 옹호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선거, 여론, 자본, 언론이 결합할 때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고 변질되는지를 극적인 대화 속에 녹여 냈다. 

이는 <사과수레>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작품임을 보여준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확고한 신념을 지닌 듯 보이지만, 그 신념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권력 앞에서 타협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과 독자는 ‘현명한 통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적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쓰던 1928년 말 이전, 버나드 쇼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서(1928년)’를 썼으며 노벨 문학상(1925년)을 받았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데다 ‘성 조앤(1923년)’ 이후 희곡을 쓰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그가 창작력을 잃은 건 아닌지를 의심하던 때였다. 그런 차에, 쇼의 작품 ‘므두셀라로 돌아가라(1923년)’를 처음으로 연출한 연극 기업인인 배리 잭슨 경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다음 해인 1929년에 몰번에서 쇼의 연극을 드높이기 위한 연극페스티벌을 시작하겠다면서, 새 작품을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몰번은 런던에서 서북서쪽으로 2시간, 버밍엄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구릉지대인 몰번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쇼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몰번의 단골 방문객이었다. 매년 봄이면 이곳을 찾아 온천을 즐기고 휴식을 취했다. 조용한 온천 마을의 분위기가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즈음 쇼에게 그곳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쉬던 마을에서 자신의 연극을 해마다 상연하기 위한 축제를 시작하겠다는데, 창작력이 아직 메마르지 않은 작가에게 이보다 더 솔깃한 제안이 있을까? 결국 그는 6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연극이 먼 미래의 일을 담았다는 언질이 주어지지만, 영국의 정치현실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뻔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차라리 군주제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았으니, 그 군주가 능력과 교양을 갖추고 자비롭기까지 하다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군주는 도대체 어떻게 길러낸단 말인가? 쇼가 가입한 페이비언 협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노력으로 여성 참정권 법이 통과된 게 지난 7월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모든 성인이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겨우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영국 여성들이 이 투표권을 처음으로 행사하려면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민주주의의 한계를 봤다고 했으니, 진단이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아직 민주주의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한 인류 대다수의 처지에서 보자면,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고갱이인 표현의 자유란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작가가 할 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쇼 선생이 어떤 분인가? 그로선 눈에 뻔히 보이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양원제라고 하지만 상원은 귀족의 집단이니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가진 실권도 별것 없다. 산업혁명 이후 민간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귀족이든 평민이든 유능한 인재는 정치계에 입문하려 들지를 않는다. 실권 가진 하원은 어떤가? 자리를 탐하는 어중이떠중이가 너무 많다. 이들은 국리민복보다는 다음 선거에 관심이 더 많으며, 국민의 소리보다는 대기업의 요구에 더 귀 기울인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책임질 일, 즉 나라의 미래를 위해 큰 계획을 세우는 일은 자꾸만 뒤로 미루고, 인기에 영합하거나 금권정치에 길들기 십상이다. 그러니 쇼로선 성인 선거권에 의한 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의 실현은 사기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한 제도라는 쇼의 주장을 성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