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해롤드 핀터 '지하 아파트'

clint 2026. 4. 2. 06:21

 

 

방이 하나 있고 남자 스톳트와 로오. 여자 제인이 있다.

가까운 친구 사이인 둘. 로오가 있는 지하 아파트에 스톳트가 제인을 데려온 것이다.

둘은 이 방과 여자를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다. 침대를 제인에게 쓰라고 하고

셋의 동거가 그렇게 시작된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들의 묘한 동거는 계속된다.

남자가 한 사람 나가면 제인에게 사랑공세를 펼친다.

되풀이해서 반복되는 묘한 상황들-

스톳트와 로오는 결투도 벌이는데 제인은 무관심하게 커피를 타서 마신다.

부서지는 소리 뒤에 드비쉬의 음악. 스톳트의 승리 같다.

극은 처음과 똑같이 끝난다. 다만 두 남자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로오와 제인은 지하 아파트 앞에 서있다. 로오는 스톳트의 레인코트를 입고 있다.

방안 장식도 맨 처음과 같다. 스톳트는 난로 옆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초인종 소리. 스톳트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 로오를 반갑게 맞이한다.

로오는 여자는 차지했지만 방은 빼앗겼다. 그래서 방을 찾으러 온 것이다.

한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이다.

 

 

 

로오와 찰스 스톳트라는 두 남자는 '지하 아파트'와 때로는 공통의 여자친구인 제인을 
두고 경쟁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관계, 아파트 소유권, 
그리고 제인과의 관계에서 역할을 뒤바꾼다. 방안의 변화하는 가구 배치는 그들의 
변화하는 역할과 시점에 따라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지를 반영한다. 처음에는 제인이 
두 남자에게 순종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극이 전개됨에 따라 때로는 두 남자 모두를, 
혹은 둘 다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런 모습이 반복되는 것이다.

 

 

 

세 사람이 어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경과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지문에 의하면 겨울이 여섯 번, 여름이 다섯 번 지나갔다.

그러나 실제로 경과한 시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계절과 실내장식 등이

논리적 이유 없이 변화하듯 무대 위 인물들의 감정과 태도 그리고 그들의 상관관계도

일관성 없이 자꾸 변화하는 사실이다.
일관성이 있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이다.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소유와 끊임없는 도전이다.

두 주인공은 집을 차지하거나 여자를 차지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못 갖는다.

둘을 동시에 갖지는 못한다.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따라서 끝이 없는 갈등과 인물들의 모순투성이, 따라서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그린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평자는 이 작품을 로오의 마음속의 꿈이나 아니면

그의 환상을 극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톳트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막상 그를

만났을 때 생겨날 변화에 대한 공포 등을 극화하였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텔레비전을 위해 쓰여진 것인데 특히 이 작품에서 핀터는 무대극이 갖는

시간적, 공간적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자재로 시공을 넘나들고 있다.

말보다는 시각적 영상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여기저기 맞추어 가며 인간 내부의

미묘한 갈등, 고뇌 등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핀터 특유의 대사 - 반복을 통한

코믹한 대사, 이중의미를 가진 말, 앞뒤가 상반되는, 모순되는 말들 - 과 애매모호한,

증명되지 않은 많은 사건들은 여전히 이들 극 속에 산재해 있다.

 

 

 

'지하 아파트'는 1967년 2월 BBC 텔레비전에서 핀터 자신이 스톳트 역을 맡아

초연되었다. 무대공연은 다음해 뉴욕 이스트사이드 극장에서 <티파티>와 함께 공연됐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핀터가 19세 때 썼던 짤막한 다이얼로그 '컬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후 이 이야기는 시로, 단편소설로 개작되었다가 마침내 1963년 '콤파트먼트'라는

제목의 영화대본으로 썼으나 제작되지는 않았다. 

 

해롤드 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