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송희지 '리암 빌'

clint 2026. 4. 2. 15:29

 

 

”언제가 됐든, 우리는 여기로 돌아 올거야.“
가까운 미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회가 완전히 붕괴된 가운데, 
'리암'과 '빌' 두 남자는 숲속 깊은 마을에서 단둘이 고요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이 '커트'가 도움을 청하며 그들의 마을에 나타난다.
 미심쩍음을 느끼면서도 그를 마을에 머물게 하는 리암과 빌. 
그러나 커트는 서서히 숨겨진 속내를 드러낸다. 
커트는 리암과 빌을 각각 만나면서 서로 이간질 하듯 서로에게 찔러주며
둘 사이의 틈을 벌려놓는데... 결국 리암과 빌은 서로 소통하며 그 원인이
커트에게 있음을 깨닫고 그를 이곳에서 떠나보내는데...
떠난다며 갈을 떠난 그가 여기 집에서 훔친 총으로 무장하고
다시 돌아온다... 



좀비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살아남은 한 커플의 서사로, 공포와 혐오를 어떻게 
이겨내는가 하는 것을 제시한 작품이다. 긴장감 있는 호흡으로 이야기를 장막으로 
구성해 내는 힘이 돋보였으며, 타자성의 공포를 세심하게 드러내고, 인물의 전사를 
잘 직조했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아포칼립스, 퀴어 서사 등 동시대와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3막이 마치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는데, 이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다른 살인으로 극복한다는 점, 
추가 살인의 대상을 죽어도 되는 사람으로 혐오스럽게 그린다는 점 때문이다. 
서사가 돌아가기 위한 극적 장치로 살인의 죄책감과 타인의 죽음을 다룬다는 점이 
우려되는 지점이었다. 퀴어 연인을 그리는 것을 넘어 퀴어성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에서 이러한 우려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2025 <봄 작가, 겨울 무대> 낭독공연 심사위원 평에서.



작가의 말 - 송희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화면과 마주 앉을 때면 언제나 아래의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떤 게이들의 이야기를 쓸 것인가?"
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한 때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손쓸 방도도 없이 죽고 앓던 시기. 그때 저는 여러 소식들을 통해 감염의 공포가 어떻게 공동체를 해체하는지, 혐오를 생산하고 타자의 위계를 나누는지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때 저를 쓰도록 만든 욕망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헤테로토피아를 그리고 싶다."  "오랫동안 감염이라는 명목 아래 혐오를 경험해 온 남성 동성애자들이, 그곳에서 '너'와 '나'로 구성된 최소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고 다듬으면서,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전체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 한정된 공간 안에서 둘만의 행복과 고통을 공유하는 것.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 '가능'을 향한 분투를 염두에 두지 않고 두 사람의 삶을 이상적으로만 그려 낸다면, 그 이야기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런 이상 안에서 두 사람은 정말로 계속 행복할까요? 고민 끝에 저는 '안주하는' 이야기보다 '분투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남성 동성애자가 병마가 휩쓴 세상, 팬데믹 - 아포칼립스 시대에서야 비로소 재현된 이상향을 체험하는 이야기가 아닌, 외부의 침입에 의해 그런 공간평화의 한계 또는 지속 불가능성을 자각하고, 그들의 진정한 '리암 빌'(집)을 만들기 위해 떠나는 서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리암-빌 두 생존자의 육체가 살아남음의 고통을 입은 채 살아감의 지난함과 맞서고, 희고 깊은 숲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싶었습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졸업.
2025년 <탐조기>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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