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지로 골목에서 오래된 다방을 운영하는 박복자.
한때 1970년대 근대 산업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이제 개발과 철거 문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매일 다방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라곤, 보상 문제에 대한 갈등과,
생업의 터전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뿐이다.
그러던 중, 인근 공사장의 실수로 다방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그 틈에서 복자는 오래된 자개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자개상자를 손에 쥐는 순간, 복자는 1970년대 다방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젊은 시절에 함께 일했던 최지숙과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수성다방으로 오세요. 편안함을 드립니다.“
사라지는 공간,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이 작품은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근대 산업을 이끌어온 을지로·청계천 배경으로,
이곳에서 기술 하나로 자리를 지켜온 장인들과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다. 개발과 철거로 인해,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던 골목과 가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그곳을 지켜온 이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현실을 그린다.
<수성다방>은 기술과 노동, 젠트리피케이션 등 조명되지 않는 사회적 주제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내며, 사라져가는 공간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드는 시공간의 변화가 벽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후 먼지나 진동으로 현실과 과거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반복되는 시간 이동을
통해 복자의 심리적 혼란을 강조한다.
극의 마지막에서 철거된 골목이 우주선으로 변한다.
사라진 공간과 지워진 인물들이 어디로 향할까?

연극 <수성다방>은 을지로라는 장소의 다층적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을지로 골목은 오래전부터 기술 자와 장인들의 손기술이 모여 있던 자리다.
세월과 기름과 금속 냄새가 섞인 이 골목은 한국 산업사를 버티게 해온
근육 같은 장소였다. 그러나 재개발이 시작되면 이 생태계는 '노후화된
도시 공간'으로 분류되며 빠르게 해체된다.
작품은 바로 그 과정 을 다방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압축해 담는다.
재개발이 시작되며 다방의 벽이 부서지고 그 안에 다방의 주인 박복자가
애지중지해왔던 '자개함이 드러나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수성다방이라는 공간에 '깃들어 있는 수많은 이들의 경험을 소환한다.
복자는 배달을 다니며 골목 구 석구석을 누빈 덕에 그들의 실패와 성공을
함께 겪으며, 골목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골목의 역사를 몸으로 아는 사람인 셈이다.
그러니 수성다방이라는 공간은 자라는 여성의 몸과 다를 바 없다.
이 장소는 복자가 존재할 때 살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고,
그녀가 꽁꽁 감추고 있던 기억이 드러나는(벽에서 자개함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독특한 점은, 현실극의 리듬에 환상요소가 자연스럽게 낀다는 것이다.
황진수가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하고, 청계천 기술자를 모아 우주선을 만들겠다는
황당한 제안이 등장한다(이 설정은 당시 있던 우스갯소리-청계천 기술자들이 모이면
우주선 빼고 다 만들 수 있다던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관객을
이탈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상상"이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회적으로는 주변부로 밀려난 기술자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환상 속에서 재구성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술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상징적 선언으로 바뀐다. 환상은 이공 동체가 가진 존엄과 슬픔을 동시에 비춘다.
그녀의 여왕 즉위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물과 함께 그녀가 사라지길 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수성다방 자체가 그녀의 몸임을 생각하면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지막 상상은 더 슬플 수 밖에 없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에 스스로가 주는 작은 축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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