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의 공작 빈센티오는 신임하는 신하 앤젤로에게 공작직을 대행하게 하고
수사로 변장해 민심을 살핀다. 공작은 외유를 핑계로 아무도 모르게 앤젤로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세상을 바꿔놓는 과정을 지켜보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앤젤로는 공작 대행으로서 엄격한 법 집행을 공언한다.
그는 오랫 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과거의 법을 살려낸다. 엄격한 법의 잣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사형에 처한다.
그러던 중 결혼 전 애인을 임신시켰다는 간음죄로 클라우디오를 잡아들이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클라우디오의 여동생 이사벨라가 사면을 간청하자
앤젤로는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앤젤로는 클로디오의 사면을 조건으로
이사벨라에게 자신과 잠자리를 하면 풀어주겠다는 것을 제안한다.
수사로 변장해 이 모든 사연을 전해들은 빈센티오는 앤젤로를 속여
클라우디오를 구할 묘책을 내놓는다. 앤젤로는 자신이 엄격하게 금한 죄 때문에
클로디오와 같은 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법에는 법으로>는 권력의 연극적 재현을 통해 권력을 미화하고 과시하면서
권력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군주의 모습을 재현하는 작품이다.
이사벨라의 순결도 지키면서 앤젤로의 정치적 판단의 오류도 무마시키는 공작의
제안은 극적이고 재미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처럼 한발 물러나
있다가 멋지게 등장하여 모든 문제를 적절하게 마무리하는 공작의 모습은 비겁해
보이기도 한다.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모두가 만족스럽게 문제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공작이기 때문이다. 고작 권력자의 판단에
의해 법도, 도덕도, 정의도, 하루아침에 바뀌는 모습도 씁쓸함을 자아낸다. 엄격한
법의 잣대로 타인을 벌하지만 자신의 과오는 권력으로 정당화하려는 앤젤로의
모습도 오늘날 통치자들을 연상시킨다. 모든 문제를 해결한 공작은 이사벨라에게
청혼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법에는 법으로>(Measure for Measure)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1603년 또는 1604년에 쓰인 것으로 간주된다. 1623년 퍼스트 폴리오에 처음
출판된 이 작품은 코미디로 분류되었으며 이 작품의 최초 공연기록은 1604년이다.
1604년에 제임스 1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왕립극단’이 궁정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연극성’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는 군주의 모습을 재현한 정치극이다.
결말이 화해로 끝나기 때문에 희극으로 분류되지만, 비극적이고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문제 희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작품은 1992년 국립극단에서 번역겸 연출인 김창화에의해 국내초연되었다.

도덕과 정치에 관한 연극적 표현의 가능성 - 번역 연출 김창화의 글
우선 1988년 독일 셰익스피어 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 가운데서도 특히 이번에 공연될 <법에는 법으로>는 그간 본인이 귀국해서 겪은 터무니없이 보수적이며 거의 자멸의 위기에 도달해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연극계의 집단이기주의적 근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속쓰린 경험을 통해 도덕과 정치에 관한 연극적 표현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희망을 갖게 한 작품이며 더구나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상업적 목적과 기능을 벗어나 순수하게 연극적 표현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국립극단이 이 작품을 택했고 번역만이 아니라 연출작업까지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다행스러웠다.
<법에는 법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문제극들 가운데서도 어두운 희극(dark comedy)이며 특히 정의와 자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연출작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실정법과 인정법의 한계를 통해 진실이 무시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지배자가 주장하는 정의와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인한 과오를 용서받고자 자비를 구하는 자의 솔직함을 대비시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도덕성에 관한 관점과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들의 사실적 표현인 정치를 연극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건강한 사회는 도덕적으로 조금의 결함도 없는 사회가 아니며 정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반어법적 진실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그래도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성에 관한 명상의 시간은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를 보다 더 행복하게 가꾸는데 기여할 것이며 민주주의가 방종과 탐욕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설 때 정치는 도덕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 함께 잘 사는 사회가 어렵다면 그래도 사람 사는 꼴은 지녀야 할 책임이 정치가에게 뿐만 아니라 연극인에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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