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책은 가난한 사병으로 아내와 아이의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마다 않는다.
보이책은 마리를 사랑하여 아이까지 낳았지만 가난으로 결혼식도 못 올렸다.
중대장은 보이책의 가난을 악용하여 푼돈을 주면서 온갖 불법적인 일을 시킨다.
의사도 가난을 이용하여 푼돈을 주면서 완두콩만 먹으며 버티는 생체실험 도구로
이용하고, 보이첵은 수시로 환각 증세를 보이는 등 심신허약 상태에 빠진다.
가난한 삶에 지친 마리 앞에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악대장이 등장한다.
가난한 삶에 지친 마리에게 악대장은 금품을 선물하는 등 물질적으로 유혹하고
마리는 결국 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간다.
중대장은 의사한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느라 마리의 외도를 보이첵에게 알린다.
보이첵의 추궁에 오히려 큰소리치는 마리. 악대장에게 덤비지만 단숨에 제압당하는
보이첵은, 마지막을 준비하듯 소지품을 정리하고, 마리를 데리고 들로 나가
칼로 살해한다. 칼을 호수에 버리나 체포되는 보이첵. 환각증세가 심해지고
중대장, 의사, 악대장의 집단적 조롱에 넋이 나간 채
법정에서 마리가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보내달라고 외친다.

이 작품은 2015년 2월 극단 노을이 오세곤 재구성 연출로 노을소극장에서 처음
공연하였다. 이어 2016년 8월에는 밀양연극제 참가작으로 밀양연극촌 내
가마골소극장에서 공연하였다. 그리고 2020년 11월에는 아산문화예술포럼이
오세곤 연출로 아산의 CS아트홀에서 공연하였다.

'보이첵'은 평범한 한 시민인 프란츠 보이첵이 그의 동거녀 마리를 살해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실제 이 이야기는 재판기록에 근거를 둔 실화이지만 작가 뷔히너는 극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더하기 위하여 많은 장면을 추가하였다.
뷔히너가 <보이첵>을 쓰게 된 것은 우연히 접하게 된 아버지의 의학잡지 덕분이었다. 거기엔 애인을 죽인 한 살인범의 정신감정에 관한 논쟁이 실려 있었고, 이 사건의 주인공은 헤센공국에 살았던 전직군인이자 가발 제조공인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첵(1780-1824)이었다. 1821년 41살의 보이첵은 당시 동거중이던 46세의 미망인 부스트가 다른 군인과 통정한 사실을 알고 라이프치히에서 그녀를 칼로 살해했다. 보이첵은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1824년 라이프치히 광장에서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이 사형집행은 보이첵의 정신착란증을 근거로 당위성 논란이 불거졌고, 의학계와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뷔히너는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치정살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가 <보이첵>에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자본과 권력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노예상태로 전락해버린 하층민의 비애이다. 사회 권력구조와 억압에 대한 뷔히너의 비판적 시각은 이 드라마의 인물 구도에도 잘 드러나 있다. 보이첵과 마리는 권력층의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는 '개인'들이다. 중대장, 의사, 군악대장 등은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계급을 대변하며 따라서 직함만 있을 뿐 개인적 이름이 없다 당시 헤센 공국은 결혼하려면 경제적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혼인허가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제4계급의 하층민이었던 보이첵은 돈이 없어 마리와 결혼하지 못했고, 마리는 동거상태에서 미혼모가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보이첵은 상관으로부터 도덕성이 없다고 비난받고 경멸당했다. 그러나 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중대장이나 의사는 더 외설적이고 비인간적이다. 뷔히너는 보이첵의 살인과 동거녀의 배신을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이나 치정살인으로 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는 이들의 비극이 사회의 착취와 억압구조에서 파생되었음을 직시하고 드라마로 형상화시켰던 것이다. 착한 남자 보이첵을 광란상태로 몰아간 것도, 마리를 배신의 유혹에 빠뜨린 것도,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하는 지경까지 몰아간 것도, 사회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폭력 상황에 기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4편의 상이한 판본이 남겨진 <보이첵>은 27개의 장면들이 정확한 순서 없이 뒤섞인 채 발견되었다. 뷔히너가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를 원했는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죽은 후 동생 루드비히 뷔히너는 판본의 철자색이 바랬다는 이유로 <보이첵>의 유작발간을 포기했고, 1879년 작가 칼 에밀 프란초스가 정리하고 재구성해 완성본을 처음 발표했지만 원작을 많이 변형시킨 탓에 논란이 분분했다. 학계에서는 뒤늦게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고 1920년대부터 원본의 구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원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뷔히너 연구의 과제로 남아있다. 드라마 <보이첵>은 너무나 열려있고, 구성형식도 자유로워 일정한 예술사조에 편입시키기 어렵고 의견도 다양하다. 하지만 개방희곡의 효시로 불리는 이 작품이 현대문학을 열었다는 데는 모두 일치한다. 그의 드라마를 당대에 낯설게 만들었던 과감하고 과격한 실험적 기법들은 표현주의 작가들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알베르트 카뮈 역시 그에게서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예견한 선배를 발견했다. 작품의 메시지로 보나 드라마의 파격적 현대성으로 보나 과연 뷔히너의 등장은 한 세기를 앞서 현대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미완성 유작으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첵>은 수십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연극무대뿐 아니라 영화와 오페라에서도 재현되었다. 이는 작품이 가진 현대성과 혁명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작품이 희곡사에서 지니는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19세기 초반의 극작품으로서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열린 형식으로서 이미 현대드라마 형식을 선취하고 있다. 그리고 공연 극단이나 연출에 의해 불분명한 원본을 재구성되거나 또는 각색, 윤색 등으로 공연본을 만들어 등장인물 수부터 공연시간, 그리고 순서들이 제각각이다.

보이첵이 가장 사랑했던 마리를 죽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이첵은 지배계급의 횡포에 시달리면서도 마리와 아기가 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상관의 폭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논리를 펴며 저항한다. 중대장과의 논쟁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자신을 의사의 생체실험에 내맡길 정도로 그의 가족사랑은 끔찍했지만 사회구조적으로 약자 편에 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보이첵의 말처럼 가난은 미덕을 모르기에. 완두콩만 먹고 견디던 보이첵은 점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마리에게도 충실하지 못해진다. 그러다 결국 마리는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가고, 격분한 그는 군악대장과 결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체력이 딸려 싸움에 지고 만다. 극에 달한 그의 분노는 마리에게로 향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마리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이게된다. 이렇게 해서 폭력의 피해자인 보이첵이 또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부당한 사회체계와 억압구조에서 경제적, 정신적 착취 속에 스러져가는 인간 보이첵의 비극은 봉건시대의 과거사만이 아니다. 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신경제주의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존재의 불안과 생존위기는 더욱 심각하니까. 문제는 비단 경쟁의 논리에 따라 밀려난 사람의 좌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버텨낸 사람들 역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살고, 취업난에 내몰리고 결혼자금과 전세자금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은 있다. 게다가 우리의 고뇌는 비단 경제적 빈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로 전락했다. 경제적 빈곤보다 더 우리를 옥죄어오는 것. 그것은 후기 산업사회의 경쟁체제가 몰고 온 절대적 시간빈곤층이다. 이렇게 또 다른 빈곤 속에 허덕이며 '삶의 기쁨' 인 마리를 스스로 죽이는 보이첵, 그게 바로 우리들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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