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애기 장수’가 나타나 북을 울리며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전설을 가진 충청도의 한 마을. 만복은 봄이 되어 볍씨를
뿌리면서도 고향을 떠나려고만 하는 아들과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농사,
수입개방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들이 “여태껏
농촌에 붙잡아놓고 내 신세를 망치게 만든 것이 아버지”라며 자신을 원망하자
비관한 만복은 북 앞에서 농약병을 집어 든다.
시대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배가 넘는 장리쌀로 마을 사람들의
등을 쳐먹는 백첨지는 아전의 지시에 따라 갖은 명목으로 각 집에 말도 안 되는
군포를 물리며, 고을수령의 공덕비를 세울 돈을 거둬간다. 또다시 부족미가
추징되자 이를 거부한 농민들에게 앙심을 품은 백첨지는 동학도의 누명을 씌워
그들을 잡아들인다. 겨우 관아에서 풀려나온 농군들은 애기장수를 믿고 살아
왔지만 그동안 변한 게 아무것도 없으며 이제는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의 상징인 북을 찢으려던 백첨지를 결박한 마을 사람들은
관군이 몰려올 것을 대비해 힘을 모아 싸우기로 결의한다.
죽창을 들고 관군과 맞서 싸우는 동네 사람들의 귓전에 애기장수 북의 울림이
들려오고, 사람들은 의기충천하여 싸움에 나선다.
다시 100년 후인 현재. 아들을 따라 서울로 가는 만복은 고향마을을 떠나기 전에
애기장수 북 앞에서 마지막 기원을 울린다. 만복이네를 전송하기 위해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더라도 남더라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대전 민족예술단 우금치의 동학농민운동 기념 마당극 <우리동네 갑오년>은 1994년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을 맞아 열린 전주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연극한마당’ 공식초청작이다. 1984년 과거의 동학농민전쟁이 1994년 현재의 충청도 한 마을의 현실과 겹쳐지면서 농민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5년 제7회 전국민족극한마당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경북여성농민회 초청공연, 우수마당극퍼레이드(1999)를 비롯하여 70회 이상 전국적으로 공연되었다.

‘우금치’의 <우리동네 갑오년>(공동창작, 류기형 연출)은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전봉준 등이 중심이 된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줄기를 훑지 않고, 오히려 충청도 한 마을에서 맞이하는 동학농민전쟁을 그리면서, 그것을 1백 년 후인 90년대 그 마을의 농민현실과 오버랩 시킨다.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6, 7년 동안 꾸준히 농촌의 현장공연에만 매진해온 이 극단은 현재 농민의 고통과 분노, 절망, 그 속을 비집고 솟아나오는 과장되지 않은 해학 등을 충청도 ‘원단 사투리’를 구사하며 놀랄 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재 농민 형상화의 힘을 바탕으로 1백 년 전으로 밀고 올라가 지주, 탐관오리의 착취와 외세에 밀려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1백 년 전의 농민은 단지 텔레비전 사극 속의 농민이 아닌 현재 농민과 같은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며, 사극에서와 같은 불편한 과장이 없는 자연스러운 농민적 연기를 만들어낸다. 정통 마당극의 교과서적인 무대 운용을 해낸 점이 돋보였다. 연기자 모두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모 돌리기, 풍물, 허드레춤과 노동요, 안정된 연기 등의 여러 가지 역량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도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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