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80대 후반으로 오래 사셨다.
남들이 별로 관심 없는 좋게 말해 장의사 일을 하셨고, 염집을 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분들 염을 하여 입관하고 발인을 하셨건만
이제는 본인이 들어가실 차례가 된 것이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계시다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하여
오래 살던 집에서 편히 주무시고 아침에 운명하신 것이다.
첫째 아들과 셋째 딸이 주무실 때까지 얘기를 나눴고
아버지는 죽으면 상여를 타고 가서 집사람 옆에 묻히게 해달란다.
평생 아무런 부탁을 안 하던 아버지의 부탁이다.
아버지는 슬하에 4남1녀를 두셨다.
그러나 집사람과 넷째 아들은 일찍 죽어 아버지가 손수 장례를 치뤘다.
지금 50대인 첫째아들, 둘째 아들, 셋째 딸, 막내아들도 30대 후반이다
여기에 큰 며느리와 사위가 그의 직계자손이다.
연락받고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장례는 재래식으로 하고 상여로 하겠다고 하나
둘째가 반발한다. 요즘 세상에 무슨 재래식이냐고. 장례식장에서 하잖다.
고인의 유언이라며 첫째가 단호히 결정한다.
막내가 자진해서 아버지의 마지막 목욕(염)은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나선다.
첫째는 둘째에게 상여 노래 후렴을 하라고 청한다.
그리고 친척들, 친구, 동네분들 연락을 하고...
첫째는 둘째를 시켜 지붕에 올라가 부친 상의를 흔들며 복(復)을 외친다.
"해주 최씨- 최- 일- 동-! 복-! 복이여-!"
첫째는 공수부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비행 낙하훈련에서 다리를 다쳐
전역하였고, 지금도 한쪽 다리를 전다. 인력회사를 운영하고, 수화를 하는 아내와
자식이 둘 있다.
둘째는 아버지에게 제일 구박을 많이 받은 아들로 일찍 집을 뛰쳐나갔다.
장의사 하는 집안 꼴이 부끄러웠단다. 그러나 노름에 빠져 여기저기 빚투성에다
아직도 한몫 욕심에 급전까지 빌려 그짓을 계속 한다. 그 일로 아내도 나갔고.
셋째는 유일한 딸이다. 남편이 이 동네 출신으로 둘째의 후배이고, 그래도 같이
맞벌이 하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40대 초의 여자다.
막내는 30대 후반으로 독신이다. 공장 기능직으로 근무한다.
염습(殮襲)
다음날 막내가 염습을 한다.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그분을 깨끗이 목욕시키듯
닦고 본인이 원하던 가장 아끼던 양복으로 갈아입힌다. (고인은 삼베 수의 입는 거,
왜놈들이 만든 풍습이라고 싫다셨단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해둔 관에 입관한다.
이 입관 전까지는 아버지가 등장해, 저승사자와 말도 나누고, 자식들 마음도
헤아리는데, 입관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둘째는 밤중에 집의 구석구석을 뒤진다. 아마 아버지가 남긴 돈이나 귀중품이
혹시 있을까 해서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못찾는다.
둘째는 다음날 일찍 상여를 준비하고자 동네 노인을 만나 상여 조립을 부탁하고
노인은 술마시며 상여질 꾼들이 문제지 이거 조립은 금새한단다.
상여꾼들은 첫째가 인력회사의 일당 인력을 요청한다.
계속 전화가 오는 둘째... 아마도 빚독촉인것 같다. 그는 형, 동생에게도
꽤 돈을 빌렸고, 제때 갚지 못해 눈치를 보며 술만 들이켠다.
결국 덩치큰 2명의 건달이 문상을 왔다며 둘째를 찾는데, 눈치 챈 매제가
무마해서 돌려보낸다. 계속 술만 들이켜는 둘째, 첫째와 싸움도 벌어진다.
상가에 온 친척들도 무슨 일인지 싸움이 나고...
다음날, 발인날이다. 상여는 준비가 되었다.
형제들이 둘째한테 온다. 아버지가 남긴 돈을 둘째에게 주라고 했다며 건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여노래를 잘 불러 달라고 모두 요청한다.
둘째는 운다. 슬피 운다. 아버지는 자식들 형편을 모두 알고 계셨던 것이다.
둘째는 아버지를 위해 요령을 흔들며 상여에 앞장서서 후렴을 던진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살던 생가를 다 버리고
북망산천을 나는 가네"

가족의 의미, 전통적인 죽음의 형태가 현대에도 유효한가,
사회 구성원의 하나인 개인의 의미 등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아직 공연되지 않은 작품인 '만가'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이다.
임종- 복(復)- 염습(殮襲)- 상여- 반상여놀음- 상여소리의 구성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형제간의 욕심과 갈등을 헤아린
돌아가신 아버지의 혜안으로 가족을 다시 뭉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 - 김원
등단 17년 만에 희곡집을 낸다. 극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은 열망에서 책을 낸 건 아니다. 글쟁이가 되고, 나는 장남이 돼서 집안에 돈도 제대로 벌어주지 못했다. 답답할 정도로 너그러운 나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글 쓰는 아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도 어머니가 생각나면 “나는 밥버러지!" 라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죄책감이 치솟았다. 그러니 이 희곡집을 내는 건 나 그동안 놀고 먹은 거 아니라고 가족에게 생색 내기 위함이다. 또 나는 희곡 문학과 연극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므로, 이 책을 읽고 나와 희곡과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면 부탁컨대 단념하길 바란다. 나는 깡통이다.
먼저 떠난 친구가 보고 싶어 가끔 발광을 한다. 현재의 생에선 다신 그를 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언제부턴가 일만 생기면 어떡해야 하느냐고 맘속으로 그에게 묻는 게 습관이 돼버렸다. 말도 안 하고 떠나버린 (물론 당신도 몰랐겠지만) 그가 너무 원망스러워 아구창을 날리려 주먹을 쥐어보지만, 때릴 길이 없어 주먹은 내 가슴으로 향한다. 피멍든 가슴이 더 아파오는 건 이젠 당신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겠지만, 더 이상 당신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이 참 보고 싶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짐승 같은 식성과 인복, 두 가지 뿐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평소에 나쁜 생각도 많이 하는 아주 못된 놈인데, 다행히 착한 사람들을 만나 죗값 치르지 않고 무사히 잘 살고 있다. 내 고마운 분들이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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