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호인이 한 사람 있다.
식당주인인 처의 성화에 못이겨 술도 마음껏 못먹고 사람도 마음껏
좋아할 수 없는 처지지만, 그 무골호인의 삶이란 참 태평하고 낙천적이다.
성미 같아서는 매일 친구들과 술이나 먹고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더운 밥이나 한 그릇 나누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일 것이다.
그걸 못하도록 막는 아내의 심성도 그리 모진 편은 아니다.
잔소리는 조금 하는 편이지만 남편에게 더러 술값도 대주고 남편이
배고픈 사람에게 국밥 한 그릇 내미는 것을 굳이 말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외상으로 밥을 많이 팔아 아내한테 온갗 핀잔을 듣지만
어느 날 저녁 늦게 손님이 찾아온다. 아무도 몰라본다.
예전 전후 50년대의 가난한 부산 거리에서 배는 굶주렸고 딱히 기댈만한
친구도 돈도 없었던 손님,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구수한 냄새가 나는 국밥집
문을 들어섰지만, 돈이 없으므로 밥을 시킬 염치도 없다. 영악하지 못해
도둑질도 못하고 사기도 못치는 무기력한 이 인간에게 말없이 주인이
국밥 한 그릇을 내민다. 배 고플 때마다 무척이나 찾았던 이 국밥집, 그리고 주인...
그 고마움을 못잊어서 수소문 끝에 찾아온 것이다.

이 극에는 심각한 갈등이랄 것도 위기랄 것도 없다.
그저 미담이라고나 할 정도의 소품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소중한
어떤 것을 환기시켜준다.
작가는 이 장면을 두고 "이렇게 멋진 세상"이라고 외친다.
밥 한그릇 으로 정이 통하는 이 세상은 작은 유토피아이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너무도 간단하게 이 작은 세상을 망각한 게 아닐까.

6.25. 한국전쟁 때문에 각박해진 이 땅에 '멍추같은 영감'이 등장한다.
그는 권력도 돈도 학식도 없는 그저 보통사람이다. 도덕군자도 아니고
오히려 어딘가 좀 모자란 구석이 있는 말 그대로 '멍추'인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정치가나 재벌이나 학자가 아니고
바로 이렇게 따스한 가슴을 가진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영악한 시대에도 수많은 '멍추'들이 구박받고 있을 것이다.
연극적으로 봐서도 이 작품은 '멍추같은 작품'이다.
심각한 갈등도 심오한 철학도 없고, 포복졸도의 웃음거리도 없지만
그저 잔잔한 대화 속에 우리 특유의 인정만 담겨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 김희창
<멍추 같은 영감>이 젊었을 땐 "진지 드셨습니까?" "밥 먹었나?"하는 게 인사였다. 가난한 백성이었기 때문에 그런 습성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밥 같은 건 어디 가든지 의당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대접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한 습성 속에서 살아온 영감이기 때문에 밥을 팔고도 돈 받는다는 것이 거북살스럽고 멋쩍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적당히 내시지" 하거나 "나중에 함께 내셔" 하고 만다. 이와 같은 비현실적이고 비 생활적인 영감이 너무나 현실주의적인 지금에 부적당한 것은 사실이나, 같은 분위기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이같은 영감이 점점 없어지고 마는 것을 볼 때 퍽이나 애절한 情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구태의 인간형인 멍추영감은 차차로 없어진다 하더라도, 새로운 형의 멍추영감이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한 人間형이 바로 손님4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作品을 읽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나로서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너무 형식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작품을 달라는 이 기회에 다시 고쳐보려고 사흘 동안을 애만 쓰다가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내드린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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