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망상증 환자인 광인이 유별나게 밝은 달빛을 발견한 날,
주위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여러 경전을 연구한 끝에 광인은 인의도덕이 가득 적힌 경전 속에서 ‘식인’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하고, 예로부터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형님 또한 식인 무리에 끼어 자신을 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사람을 먹는 자의 형제라는 부끄러움에 광인은 사람들을 저지해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도 몰랐던 자기 여동생을 먹었다는 형의 말을 듣고 자각에 이르는데……

고골의 풍자 정신과 기법에 영향을 받은 루쉰은 동명 소설을 집필하였지만,
광인의 의미는 차이를 보인다. 고골의 광인은 본인도 신분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 에스파냐의 국왕이 되었다고 믿는 출로를 찾아내는 인물로, 광증을 빌어
세상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고자 한다면, 루쉰의 광인은 광증을 통해 중국사회를
낯설게 보고 기존질서에 맞선 저항적 인물로 니체의 초인(超人)적 형상이 담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이 가졌던 시대에 대한 유죄의식은 끝내 광인을 진정한
초인으로 세우지 못하고 광증이 결국 나아 구세계의 관직을 맡는 결말로 끝난다.
대신 '아이들을 구하라'는 외침을 남김으로써, 구세계의 유물이자,
다음 세계의 연결자로서의 자리를 광인에게 내어준다.

1918년 루쉰이 광인의 눈을 빌어 중국의 봉건예교를 ‘식인의 문화’로 규정하며
비판한 이래, 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금 무대로 옮겨진 연극 <광인일기>는
현대사회로 진입하였지만, 발전과 개발 이슈에 등한시되는 불평등의 문제, 무한 경쟁,
종교처럼 맹목적 믿음이 된 정치 등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동시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암시와 은유로 작품 곳곳에 담아 놓았다.
특히 각색을 한 좡자윈(莊稼昀)은 코러스를 활용하여 원작의 1인칭소설 형식을 효과적으로
극화하였으며, 연출 리젠쥔(李建軍)은 강렬한 신체언어와 무대미학을 활용하여
그로테스크하고 폭발적인 무대를 구현하였다.

연극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탐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좡자원은 1인칭 시점의 일기체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하면서 '개'와 코러스를 효과적으로 운용하였다. 특히 '개'는 매우 적극적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았는데, 이는 루쉰보다 고골 작 품 속의 캐릭터에 가깝다. 루쉰의 소설에서 '조씨네 개는 왜 나를 노려보고 있겠는가?'라는 한 줄 묘사에 그치는 반면, 고골의 소설에서 개는 인간세계를 평가하거나 귀족사회를 비웃으며 풍자한다. 관찰자이자 서술자 역할을 하는 조씨네 집 개는 고골의 '개'처럼 이미 인간세상의 가치와 원리를 통달하였다. 개는 광인의 지척 거리에서, 그리고 광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때로는 광인을 자극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시키기도 한다. 연극에서 광인은 권위와 관습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만 개는 광인이 결국 니체식 초인(超人)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염세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연극 <광인일기>는 '개'의 캐릭터를 적극 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광인의 광증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루쉰의 고뇌를 더 선명하게 시각화하였고, 연극 내내 인간세계를 이화(異化)시키는 시선을 무대 위에 존재하게 만드는 효과를 획득하였다. 아울러 코러스의 활용도 돋보인다. 일기체 형식의 소설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기에 이야기 소재가 매우 빠르게 전환되고 확장된다. 좡자원은 코러스를 활용하여 광인에게 압박감을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언과 의견을 개진하며, 윤리적인 틀을 설정한다. 또 코러스를 통해 마을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등장인물의 조형과 빠른 등퇴장 및 장면전환을 하며 환각과 광증,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기체 형식을 입체감 있게 무대화 해낸다.

좡자윈이 연극으로 각색한 <광인일기>는 연출가 리젠쥔이 이끄는 신청년 극단의 창단기념 작품으로 2011년에 초연을 올렸다. 중국은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쳐야 했던 봉건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통과한지 오래이지만, 연극 <광인일기>가 그려내는 동시대는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의 사회'이다. 발전과 개발 이슈에 등한시되는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무한 경쟁 속에 무감각하게 자행되는 타자화, 흡사 종교처럼 맹목적 믿음으로 신성화된 정치 등 봉건 이데올로기 속에 작동하던 식인의 원리가 현재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음을 작품 곳곳에서 은유와 상징으로 비판한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극작술은 반복, 나열이다. 좡자원은 설명적인 메시지 전달보다 나열과 반복을 통해 강렬하게 메시지를 강조한다. 음식과 죽음, 식인의 기록들을 나열하고 반복하면서 선명한 메시지와 더불어 광인의 강박적인 상태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하였다.

리젠쥔은 무대 디자이너 출신 연출가인데, 공간에 대한 탐색과 운용에 있어 탁월한 감각을 보인다. 리젠쥔은 <광인일기>에서 '식인의 사회'를 강렬하게 시각화하였다. 그는 동시대 현대문명을 희뿌연 먼지와 깨어진 벽돌이 산재한 디스토피아로 구현하였다. 그는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영감을 당시 베이징에서 얻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서 베이징은 대규모로 도시 정비를 하고 있었다. 벽돌과 희뿌연 먼지, 그리고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사현장은 베이징의 일상이었고, 이 화려한 도시를 재건하는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농촌에서 베이징으로 들어온 농민공들이었다. 이들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베이징을 재건설하는 주 역이었지만, 정작 베이징 사회의 안전망에는 포함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였다. 깨어진 벽돌이 펼쳐진 폐허에 배우들이 흰 가면을 쓰고 앉아 한껏 응축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 연극은 시작된다. 기이하고 몰개성화된 이들은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벽돌 틈을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욕망에 눈이 벌게진 채로 서로가 서로에게 벽돌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소통 불가능한 문명의 바벨탑을 쌓듯, 벽돌을 쌓아 올린다. 강렬한 이미지와 그로테스크한 움직임 속에 무대는 희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차오른다. 리젠쥔은 벽돌이 산재한 무대 아래에 앙상한 철골 프레임을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이는 마치 공중누각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 불안감은 공연 중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한다. 광인의 두 차례의 자각, 형님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자각과 자신도 사람을 먹었다는 자각의 순간, 배우들은 프레임을 다 같이 끌어당겨 마치 지반에 균열이 난 듯한 충격을 그대로 시각화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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