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유상 번안 각색 '죄와 벌'

clint 2025. 11. 14. 19:34

 

 

우중충한 서울의 뒷골목, 대학생 이수걸은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다. 
그러나 때마침 노파의 딸이 들어온다. 그는 노파의 딸 영자 마저 죽이고 만다. 
수걸은 노파를 죽이고 얻은 돈으로 공부를 해서 인류에 공헌할 수 있다면 
살인쯤이야...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노파를 살해한 것이었다. 
수걸의 방아래에 사는 순이는 매우 온순하고 착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그러나 그 순이도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히스테리 환자인 계모 때문에 
결국 몸을 팔게 된다. 살인 혐의자로 노파 방아래서 뼁끼칠을 하던 뺑끼공이 
체포된다.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한다. 그러나 인권을 존중하는 검사는 
수걸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 그는 수걸의 논문 <비범인과 범죄>를 분석하여 
심리적으로 신중히 범행을 수사한다. 이 검사는 수걸의 범행을 확신하고 
자수를 권한다. 수걸의 마음은 흔들린다. 순이도 자수하라고 하자 수걸은 
자수를 결심하고 경찰서로 행하는데 수걸의 목에는 순이가 걸어준 십자가가 
있었고 그의 뒤에는 순이의 두 눈이 수걸을 지켜보고 눈물 짓는다.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무지하고 무가치하여 벌레와 같이 여겨지는 고리대금

노파를 살해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 노파가 움켜쥐고 있는 돈으로 연구하고

실력을 길러온 선인들에게 공헌할 수만 있다면 도리어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신념한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노파와와 또한 뜻밖에 현장에

나타난 그 동생을 살해하지만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허무와 불안에 쌓여 방황할 뿐이다.

그런 때에 그는 고난 속에서도 신을 믿고 있는 여자 소냐를 알게 되어

그녀의 경건한 신앙에 감동된다. 그는 그녀에게 범죄를 고백하고

그녀의 열렬한 권고에 의하여 자수한다.

이것이 도스토엡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줄거리이다.

 



이 19세기 후반기의 페테르부르크의 이야기를 1960년대의 서울로 희곡이란 

형식을 빌려 옮긴 것이다. 현대 인류의 입법자인 '비범인'이 되려는 수걸은 

철저한 무신론자이다. 그는 자신을 애초부터 이 세상에 내던져진 몸이며 

자기가 선택한 자기로서 자기대로 살아가겠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위 환경은 비참할 뿐이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한다. 

죄없는 자가 죄로 인해서 고통 받아야 할 까닭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신도 악한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또한 행동은 인간으로의 生의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행동파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살인행위를 악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합리화시켰다. 

그러나 그는 그 행위로 인하여 도리어 자기상실을 하고 만다. 

결국 그가 자신에 대해 눈뜨게 된 때는 자기가 자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전인류를 선택하는 것이며 전인류에게 연대하고 연루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그 책임을 지기에는 

자신에게 지나친 신념만 있었을 뿐이지, 

너무나 인간애와 양심이 없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 인간애와 양심의 소재를 찾기 위한 행위를 스스로 선택한다.

 

 

번안 각색의 글 - 하유상
극단 신협의 요청에 의하여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작소설을 번안 각색하여 한국의 무대로 옮긴 것이다. 1960年 11月3日부터 8日간 중앙국립극단 신협에 의하여 국립극장에서 박동근先生 연출로 초연했다. 원작이 천여 페이지나 되는 大作인만큼 2시간으로 공연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드는 일이었다. 더욱이 우리 것으로 번안하는 일이고 보니 더욱 힘들었다. 심지어 낱말 하나 때문에 고심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한 예로 라스콜리니코프가 신봉하는 초인사상에 나오는 "비범인"과 "평범인"같은 말도 밖에서 文字로 볼 때는 무관하지만 연극에서 대사로 들을 때는 이 作品이 "죄와 벌"인 만큼 '凡人'은 '犯人'으로 들리기 쉬울 것 같아서 '凡人'에 平字를 부쳐 '평범인'으로 한 것이다. 원작은 사건의 발단에서 결말까지가 1주 정도로 되어있다. 나는 이것을 긴축감을 내기 위해서 4일간으로 더 단축했다. 또한 原作에서는 시일이 짧은 대신에 사건이 전개되는 곳은 매우 많다. 이 많은 장소를 어느 특정된 한 장소에 집약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물론 장면을 많이 하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方法을 한다면 내가 두려워하는 산만함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원작의 잡다한 인물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새로이 설정한 인물도 있다. 원작의 인물들은 어쩌면 그리 다변인지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원고료를 늘리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어쨌든 지루한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 것으로 번안하는 데에 따르는 핸디캡도 많았다. 가령 예로 집의 구조 같은 것이다. 원작에서는 살인하는 집이 4층건물로 되어있지만 우리 현실로 생각할 때, 어울리지 않으며 또한 무대 여건으로도 무리하기 때문에 2층으로 하고 원작의 스릴한 긴박감을 내자니 땀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범죄수사도 이 작품에서 한 대목을 차지하는데 원작과 현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원작이 씌여지기는 1886年이다. 그때는 지문법이 창안되기 이전이다. 현대수사에 있어서 지문法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재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위하여 외국의 <살인론>, <범죄 수사이야기>: 우리나라의 <경찰실무법죄수사법> 등의 책을 읽어야 했다. 덕택에 그 方面에 새로운 지식을 얻었고,  이 작품에 활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