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시탄카는 어느 날 길을 잃는다.
여느 때처럼 '주인 아저씨'를 따라서 집 밖으로 나왔다가 군악대 행진을
보고는 그만 넋이 나가라 구경하다가 주인을 잃는다.
길도 집도 모두 잃은 카시탄카는 그만 떠돌이가 된다.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모른다. 카시탄카를 부리던 사람도 이 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길조차 두지 않는다.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은 채
그저 먹이만 주었을 뿐이니까.
어쩌면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거나
아예 생각조차 안 할 수 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달프거나
힘겹게 살림을 꾸리는지를 모르는 전제 군주나 독재자처럼 말이다.
길도 집도 없이 배고픈 카시탄카는 길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는지를 모른다.
어디에서 자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따스한 손길을 만나는데....
그 새로운 주인은 '서커스'를 하는 사람이다. 서커스를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를 거두어 알뜰히 보살피다가 재주를 가르친다.
카시탄카는 예전과 달리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터전에서 즐겁게 재주를
익힌다. 새로운 동무를 사귀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나날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서커스 공연 무대에 옛 주인하고 아이들이 보러 왔고,
옛 주인 아들은 카시탄카를 알아본다. 카시탄카는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주인과 동물들을 만나서 아무 걱정이 없이 살았지만, 걱정도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새로운 터전을 내버리고 예전 주인한테 달려간다.

1860년에 태어나 1904년에 숨을 거둔 안톤 체호프이 러시아에서 겪은 삶이나
그 무렵 러시아에서 마주하던 사람들 삶을 투영한 작품이다.
사람들을 모질게 다루는 전제 군주, 토지 지주들을 생각하면
계급과 신분으로 돈과 재산, 토지를 물려받아서 그 땅을 소작민들을 부려서
괴롭히던 이들을 떠올려, <카시탄카>에 나오는 개 한 마리는 그저 개 한 마리를
보여줄 뿐이 아니고 개 이야기를 빌어서 러시아 사회를 이야기하고,
러시아 정치를 다루며, 모진 사회와 정치에 억눌린 채
그만 홀로서기를 잊거나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러시아 국립뮤지컬 아동극장이, 안톤 체호프 원작의 뮤지컬 인형극으로 만든 것
(크루츠코프 세르게이비치 연출)이고, 한국에서 1996년 4월 공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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