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문화가 융성했던 세종 시대, 임금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던 채윤이
북방에서 돌아와 겸사복이 되어 궐에 들어온다.
채윤이 세종을 만나 10년 전 고모 덕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들으려 하는데,
이때 젊은 집현 전학사 장성수의 시체가 경복궁후원의 우물 속에서 발견된다.
세종에게 답을 듣지 못한 채윤, 범인을 잡으면 진실을 얘기해주겠다는 조건에
살인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다. 그렇게 채윤은 반인 가리온, 성삼문과 함께
몇 가지 단서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리하기 시작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살인이 이어진다.
네 번의 살인 현장에 남은 단서는 타다만 마방진, 피해자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 그리고 숱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저주받은 금서인 고군통서뿐.
사건은 점점 복잡해지고 범인을 종잡을 수 없을 무렵,
채윤은 세종이 그동안 비밀리에 추진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백성을 위한 글자, 훈민정음의 창제이며
이제 곧 반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 새로운 격물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젊은 학사들과 이를 막으려는 정통경학파의 반격이 더 거세지면서
그들은 세종의 결심을 포기시키기 위해 왕의 침소 강녕전으로 향한다.
이 사실을 안 채윤은 세종을 구하러 강녕전으로 달려가고
그렇게 시대의 명분을 건 최후의 대결이 펼쳐진다.

<뿌리 깊은 나무>는 2006년 출간된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긴장감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탄탄하고 풍성한 역사적 자료,
뜨거운 시대 의식을 담아 70만 독자를 감동시킨 베스트셀러다.
2011년에는 한석규와 장혁, 신세경 주연의 SBS TV 드라마로도 방영됐고,
최고 25.4%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뿌리 깊은 나무’라는 제목을
다시 한번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2014년 서울예술단은 창작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를 제작해 한국형 팩션의
또 다른 변신을 선보였다. 집현전 학자들의 연이은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는
흥미진진한 추리 서사 위에 아름답고도 비장한 선율의 음악과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안무를 얹어 다른 장르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원작을 대본및 가사에 한아름, 작곡 오상준, 연출 오경택이 맡아 초연하였다.
간결하고 현대적인 무대와 상징적이고 효율적인 영상, 부드러운 힘이 느껴지는
안무는 원작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세종과 채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한글 창제를 둘러싼 두 세력간의
이유 있는 대립이 무대적으로 시각화되고, 화려한 무대영상은 살인사건의
속도감과 텍스트의 정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또한 무용을 중심으로 구성된 훈련 장면과 격구 장면 등 서울예술단 특유의
장점을 최대화한 씬들을 통해 가무극으로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한글 창제의 배경과 과정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우리말은 존재해 왔으나 문자가 없어 한자 한문으로 표기하였다. 따라서 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공기의 중요성을 평소에는 잊고 살듯이 언어나 문자 역시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지만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자기 나라 말을 표기할 수 있는 적당한 문자를 가지고 있지 못한 민족이 겪게 되는 고통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도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러한 고통을 많이 겪어야 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한지를 사용해서 문자 생활을 영위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가 민족을 초월한 공통 문어 구실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한자와 한문은 공통의 문어 구실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한자와 한문을 사용하여 문자 생활을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자와 한문은 우리말과는 매우 딴판인 중국어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문자및 문어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한자 한문으로 표기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상황이 벌어졌다. 원래 글(문자 언어)은 말(음성 언어)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자가 오래 사용되다 보면 말과는 다른 독자적인 기능을 갖게 되어 문어가 구어와 다른 특성을 갖게 되는 일도 많이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어와 구어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문과 우리말의 거리는 엄청나게 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말과는 별도로 한자와 한문을 배우느라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상황에서 당시의 지배층은 불편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기반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지배층만이 학문을 배워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과거시험은 양반 관료로 편입되어 정치적 권력과 각종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반이었던 것이다.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자기들만이 어려운 한문을 배워서 이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의 각종 기득권들 누리고 있었으므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의 출현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고 별로 반갑지도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종이 일반 백성들의 문자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한글이라는 쉬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세종은 기득권 계층이 한글 같은 문자를 만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반발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고, 그래서 한글 창제를 매우 은밀하게 진행하였다. 그런던 중 집현진의 하급관리들이 한글과 관련된 일에 동원되자 곧바로 집현전의 사실상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최만리 등이 상소문을 올려서 세종의 한글 관련 사업에 제동을 걸리고 하였다. 최만리는 상소문에서 임금께서 건강이 안 좋아 요양을 떠나면서까지 그리 급한 일도 아닌 한글 관련 사업에 그토록 신경을 쓰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진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종은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4성과 7음 알며 자모가 몇인지 아느냐? 만일 내가 운서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 잡는단 말이냐”라고 하면서 대단한 학문적 자부심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세종은 중국의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우리말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우리말을 표기하기에 적합한 과학적인 문자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뛰어난 학자였다는 것, 그리고 요양을 가서까지 한글에 대한 연구들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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