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clint 2025. 11. 6. 09:26

 

 

일제가 한민족을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1938년.
북간도에서 어린시절부터 함께한 벗이자 동지인 사촌 송몽규와 함께 
경성으로 온 청년 윤동주.
연희전문학교 시절,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우리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배워가던 중 외솔선생이 일본순사에게 잡혀간다.
스승, 친구들, 우리 말과 글, 자신의 이름과 종교 등 많은 것을 빼앗아가고 
참담함 현실에 몸부림치던 동주는 절필과 시쓰기를 반복하며 괴로워한다.
어느 날 교회 앞 십자가에서 저항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던 윤동주는 
자신의 시를 사랑한 이선화(가상인물)를 만나고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고 시 쓰기를 이어간다. 마침내 윤동주는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시 18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지만, 일제 아래 신음하는 조선에서 ‘시’는 사치스러운 일이자 동시에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의 첫 시집 출판은 이뤄지지 않는다.

 


문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한 윤동주는 일본으로 건너가 송몽규를 
비롯한 여러 친구와 교우하며 조선의 앞날에 대해 함께 고민하던 중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힌 동주와 몽규 
각각 징역 2년의 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형무소로 이감된다.
그리고 1년 뒤인 1945년 2월 16일.
일제에 의해 반복적으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으며 생체실험을 당하던 동주는 
잦은 혼수상태 속에서 어머니와 친구들 그리고 연인 이선화를 그리워하다 
외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과 함께 29세의 짧지만 굵은 생을 마감하고 
송몽규 또한 20일 후 윤동주의 뒤를 따라 같은 사인으로 옥중 순국한다.



윤동주는 일제 식민지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평생 단 한권의 시집만을 사후에 출판했을 뿐이지만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시인 중의 하나이며, 그의 대표작 서시는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시로 평을 받고 있다. 이 공연은 가혹한 시대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윤동주의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표현된 주옥같은 명시가 한아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공연으로 완성되었다. 독립운동을 중심에 둔 윤동주 일대기가 아닌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한 청년의 고민과 갈등을 현대의 감각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무대는 그 당시 일제 시대상을 반영하며 현실과 초현실이 공존하는 복합적 공간이다. 윤동주의 깨끗한 시심, 내적 갈등은 '역사의 틈'이라는 미적 무대로 완성되었으며 그 틈 사이로 그가 살았던 역사적 공간이 모던한 현실주의적 건축물과 함께 존재한다. 여기에 윤동주 존재 위로 항상 '달'이 등장한다.

 

 


'달'은 윤동주가 시를 쓰거나 사색하는 밤에 언제나 함께 하며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조선을 강압하던 일제의 무게이다.
판타지한 달은 얇은 초승달에서 내적갈등과 역사의 혼돈이 커질수록 보름달로 몸집을 키워가다가 윤동주의 죽음을 통해 파괴된다.
총 21개의 뮤직넘버는 어느 시대보다도 다양한 음악적 재료와 산물들이 혼재되었던 일제 강점기 시대였기에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 양식을 기본으로 한다. 군가, 창가, 모던이라는 틀을 적절하게 결합하였으며 윤동주라는 특정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내면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음악적 서술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윤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상징화하여, 그 시대의 아픔을 겪었던 조선의 청년, 민족의식 그리고 문학과 같은 소재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음악 속에 담아내려는 시도를 하였다. 안무는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보다는 각 장면의 함축적 움직임을 찾아 구성 위주의 군무 형태를 만들었고, 움직임의 화려함보다는 시가 읽혀진 후 관념의 잔상이 남듯 각 장면의 동작들을 연상케 하도록 구성하였다. 

 


작품에는 총 8개의 시가 등장하지만 모두 노래로 불리지 않는다. 
윤동주 시 자체에 운율이 있기 때문에 시를 그대로 두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배우가 직접 시를 왼다. 극 중 낭송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노래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끌어간다면 '시'는 연극의 독백처럼 그의 
내밀한 속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주옥같은 윤동주의 시들이 동주 역이 직접 
낭송하고, 노래가사로도 불려진다. 즉, 시와 노래. 시는 본질적으로 그 안에 

노래를 품고 있고 노래는 시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하기에 더 다가온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 노래는 주제를 전달하고 또 극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역할 

모두를 한다. 세 친구가 함께 부르는 노래 '시를 쓴다는 것'은 윤동주의 삶에 

핵심이었던 '시'에 대해 배우와 관객이 함께 고민하게 한다. 

'시를 쓴다는 것 친구를 보내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아픔을 느끼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청춘을 바치는 것'이란 가사는 청년 윤동주의 변해가는 

'시 쓰기'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광기를 드러내는 '가미가제' 

'전쟁 전쟁' 등 노래가 흐르고 나면 윤동주는 한 뼘 성장해있다. 

청년 윤동주에게 '시 쓰기'의 의미도 변해간다. 

그저 좋아하는 일이었던 시 쓰기는 나중에는 자신의 시름을 달래는 

위안이 되고, 종국에는 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승화한다.

 



작가의 글 - 한아름 
 (...) 작업 내내 '내 미천한 필력으로 온 국민이 동경하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잘 표현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은 날 괴롭혔다. 위대한 시인의 이야기를 하는 극작가의 입장은 시댁 식구들 앞에 선 새색시처럼 마냥 어렵고 불편하기만 했다. 정말이지 한 달여간 두문불출하며 집필에 매달린 시간은 고통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그나마 아름다운 사람 윤동주가 날 위로해주었고 그의 시가 내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피날레곡 <달을 쏘다>를 처음 듣던 날이 생각난다. 내가 쓰고자 했던 윤동주의 마지막 순간이 그대로 녹아있는 곡이었다. 정말이지 <영웅>에 이어 내 텍스트를 좋아해 주는 오상준 작곡가와 다시 호흡을 맞춘 것은 작가로서, 작사가로서 큰 행운이었다. 그날 이후로 혼자 버겁게 지고 있다고 믿던 짐을 내려놓았다. 그들을 믿고... 이제 연습실의 열기는 후끈 달아 올랐다. 물론 공연에 대한 평가는 막이 오르고 나서야 받겠지만 벌겋게 달궈진 배우들의 얼굴들을 마주치며 조심스럽게 좋은 점괘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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