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우현종 '지상최고의 연극'

clint 2025. 11. 4. 06:26

 

 

門은 인간이 발명한 위대한 발명품 중에 하나다.

門은 '안'과 '밖'을 그 작은 문짝 하나로 나누고 그 통로가 된다.
제도권과 비제도권, 퇴페와 순수, 타락과 열정...
그들은 門 앞에 서 있다.

애인은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남자'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남자'가 되겠다고 한다.
아, 결정적으로 神은 떠버리 밤무대 가수로 전업하고 말았다!

 

 

 

제22회 우암 문학상 희곡부문 당선작이다. 2002년 극단 표현과 상상에서 공연하였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문 밖에서>에 대한 '한국적 화답'이라는 것이 우현종의 변이다. 

이 때문에 부제가 '다시 문 밖에서'다. 문(門) 밖으로 소외된 한 실업자의 얘기가 펼쳐진다.

여러 희곡작품을 통해 다양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며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던 작가 겸 연출가

우현종. <브레히트 죽이기> , <제삿날> 작/연출로 대학로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이제 그만의 본격적인 작품 세계를 펼친다.

 

 

 

문밖에서 문안으로 들어서는 주변 인물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외로움을 쌓아두면 병이 된다'라는 지상 최고의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문안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각 인물들은 끊임없이 문안으로 들어가고 당연하듯 문안으로 들어서지만 현 실에 적응하려는 그들 또한 타인과 세상으로부터의 괴리감으로 밀려나온다. 등을 긁어대는 아버지에게는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로서 그리고 현실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으로서의 바램을 지니며, 어머니는 아내와 엄마이기보다 여자로서의 바램을, 옛 애인은 보다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의 바램을 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이들의 바램은 그들의 내면세계로서 문밖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주인공에게 오히려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갈등을 자극하는 요인으로서 그가 더욱 문안으로 들어 갈 수 없는 문밖을 서성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대사에서 처럼 빌어먹으면서도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가수는 현실에 다가서기 위한 방법으로 가수라는 직업을 택해보지 만 낡은 것이라는 이유로 매번 현실에서 쫓겨난다. 모두가 쉽게 문안으로 들어서나 가수에게는 쉽지가 않고 매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밖으로 밀려나고 들어가는 것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 이러한 반면 현실을 따르기보다는 이상과 꿈에 집착하며 혼란을 겪는 실업자는 자신과 대조적인 가수에게 관심을 들어낸다. 이처럼 가수와 실업자는 서로 다른 것(가수는 현실에 실업자는 자신의 이상에)에 집착하지만 밀려갈 수밖에 없는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게 되는 것이다. 문(門)은 이러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단지 구분을 위한 경계일 뿐 같은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문밖은 자신의 이상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혹은 어느 날 문득 꿈을 잃어 버리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에 현실을 벗어나 보기 위한 고민으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방으로서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업자가 자신이 쳐놓은 문을 자신이 걷어가듯 이 경계를 허무는 것도 각자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할 수는 없다. 단지 주인공의 이상이 보다 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문밖의 공간은 필요할 것이다.  

 

 

 

 

작가의 글 - 우현종

희곡 지상최고의 연극(원제: 다시 문밖에서)은 처음으로 쓴 희곡이다. 스물 여섯. 겨울, 제천에서, 단숨에 열정적으로 쓰여졌다. 교내문학상을 받기도 했고, 젊은연극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미완성에 그친 희곡으로는 그 가치를 다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문밖에서는 스무 살의 혼돈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때, 난 연극을 통해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 작품이 보르헤르트의 문밖에서'였다. 주인공 베크만이 문밖을 서성이는 모습을 보면서, 공연 내내 온몸이 젖을 정도로 울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육년 후, 겨울, 제천에서 나는 또 한번 훌쩍거렸다. 2002년에 내 눈물샘은 말라버렸다. 그동안 몇몇 희곡들이 상을 받고 지원금을 받고 자잘한 평가도 받았다. 지금 이 미완성의 김상적인 희곡을 두고 몇 번이고 펼치고 덮는다. 주위의 눈치도 보게 된다. 점점 더 신중해지는 건 사실이다. 가능한가? 의미가 있는가? 가치를 따지다가 문득 나 자신에 대해서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언젠가 내 안의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난 스무 살에 곪아 터져 나온 그것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 그럼 누가? 어느 평론가 어느 미학자가?

난 아직도 이 희곡보다 나의 20대의 정체성에 대해서 흐트러지게 논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보르헤르트가 스물여섯에 쓴 '문밖에서'를 전쟁 고발 비극이란 부제 식으로 붙는 카피는 날 화나게 만든다. 그럴까? 그는 전쟁을 고발하고 싶었을까? 전생을 통해서 인간성의 파괴니, 잔인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그는 그 시대의 뛰어난 현실감각을 드러낸 요절한 젊은 천재작가였나? 전에 가끔 생각했던 것이 있다. 흔히들 요절한 젊은 예술가들이 현재에 태어나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하고 말이다. 점점 더 확연해지는 것은 그들은 아마도 천재 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더 일찍 비명횡사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부랑인이 되었거나 인기연예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데, 그때는 전쟁도 있었다. 그때는 낭만도 있었다. 그때는 사랑 비슷한 것도 있었다. 그때는 가끔씩 신도 내려와서 놀고들 갔다. 그런데 2002년에 그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뭐지? 어이 당신 천재작가! 당신이 그려낸 희곡을 좀 봅시다! 셰익스피어? 그 정도의 끼와 재능이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 결코 연극판에 기웃거리진 않았을 것이다. 궁상맞은 눈치 안 보며, 최고의 작가, 감독 소리를 들으며, 인형 같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퍼트리겠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결코 내가 딛고 있는 2002년의 대학로 환경이 보르헤르트가 살던 2차대전 전, 후와 벌 다르게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뜨겁다는 80년대의 대학가보다 미지근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난 결코 포장하지 않을 것이다. 내 스무 살 적의 혼돈에서 쏟아졌던 눈물이 갓난아기의 눈물보다 뜨겁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 지금도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 질문을 달고 다니는 자에게 이 작품이 허한 농담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

우현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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