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로펌에 다니던 변호사 한민이 엘리베이터에서
얼굴 가죽이 벗겨진 채로 발견된다. 사건은 한민의 자살로 처리되지만
엄마는 인정할 수가 없다. 한민이 왜? 그래서 자꾸만 그 이유를 찾으려하고
한민을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서 이 야기를 들어보려 하지만 다들 피한다지.
엄마의 친구인 장님 점쟁이 역시 한사코 잊으라며 말린다.
하지만 한민의 남친과 형사가 집에 찾아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한민의 녹음기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안에 분명 단서가 될 내용이 들었을 거라고 한다. 한민의 남친은 그것이
집안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엄마는 항상 한민이 이야기하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마침 사건이 있던 날
엘리베이터 CCTV가 타버렸는데 이것이 복원되면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다.
치매가 걸려 자꾸만 모든 걸 잊는 엄마는 우연히 부서진 리모컨을 챙기다가
그 안에 건전지 대신 들어있던 녹음기를 발견한다. 한민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무서워진 엄마는 형사에게 전화를 하지만 막상 형사가 도착했을 때는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녹음기를 통해 한민은 안면인식장애를 앓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연극 '얼굴도둑'은 국립극단의 2018년 첫 번째 창작 신작으로,
가족이란 공동체의 이름 아래 묵인되었던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을 다룬 극이다.
작품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갈등을
얼굴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야기한다.
작가 임빛나는 '시에나, 안녕 시에나', '에이미 GO', '얼굴도둑' 세 작품밖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심리극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작가다.
세 작품 모두 내면의 상처를 해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가족으로부터 비롯된 상처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주인공이
그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인 '얼굴도둑'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연극 '얼굴도둑'은 개인과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들춘다. 작품은 한 개인의 심리적 상처를 통해 원인과 결과,
그리고 과정을 보여주며 현재 우리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성찰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얼굴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엄마 때문에 자기 얼굴을 잃어버렸다고 믿는 딸이 엄마에게 빼앗긴
자기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엄마는 딸이 싫어했던 자기 얼굴 가죽을 벗겨낸다.
결국엔 잔인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는 두 모녀뿐 아니라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아들과 그를 강하게 키우려고 했던 형사까지,
이 작품에 나오는 자식과 부모는 자신의 바람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부모와 자식의 비뚤어진 관계로 부모는 부모의 바람대로
자식을 키우려고 하고, 그 바람대로 살아가지만 병들어가는 자식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작가의 글 - 임빛나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사회인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이다. 유년기에 이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인격이 인생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공동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의 한 시기가 되면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반드시 탈피해야 하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단지 극기의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개의 공동체를 접하면서 인간은 스스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초라하거나 볼품없는, 그곳에의 소속감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종류의 것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온건하게 탈피되거나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한 가족의 틀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을 쓰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자행되는 정체성의 침해와 경계의 융해가 가져오는 문제들을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나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서로에 대한 지나친 영향력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의외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불편함은 무겁고 거대하게 존재하는데 표현할 방법은 참 왜소했다. 아마도 이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문과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은밀하게 금기시되어왔기 때문에, 우리 감각과 언어를 연결하는 고리 같은 것이 퇴화하거나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물은 썩는다. 표현하지 못하고 응축되는 감정은 폭발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런 폭발을 겪었다. 그 발산은 건강하지 않았고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혹한 상처와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겼다 나와 같은 감각을 느끼던 많은 사람이 크든 작든 그런 예측할 수 없는 폭발을 겪었거나 겪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겪었다면 치유가, 아직 겪지 않았다면 예방이 되면 좋겠다. 이 작품으로 부족하지만 그런 감각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언어가 되어 주고 싶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을 공감해주고, 누구에게도 받지 못하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작품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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